경성대학교회

  • 2023년 표어

    '나가서 찾으라' (마18:12)

설교 및 칼럼

칼럼

홈 > 설교 및 칼럼 > 칼럼

칼럼

잊어서는 안 됩니다

페이지 정보

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22-06-13 13:03 조회2,608회

본문

캐나다의 한 노신사가 캐나다 현지 현대자동차 매장을 방문해 구매계약을 하면서 딜러에게 혹시 한국인인가 물었답니다. 그렇다고 하니 그의 입에서는 이런 가슴 아픈 사연이 흘러 나왔습니다. “큰 형이 한국전쟁에 참전했다가 전사했습니다. 그런데 당시에 돈이 너무 많이 들어 가보지도 못했고 이제는 무덤이 어디 있는지 알 수 없어서 가 볼 수도 없습니다.”
70여 년 전, 머나 먼 낯선 나라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떠난 형이 영원히 돌아오지 못했지만 어려운 형편에 형의 묘지조차 찾지 못한 채 세월이 흘러가 버린 것이었습니다.
이 말을 듣던 한국인 딜러 Lee씨는 그의 형 이름이 Roy Duglas Elliott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제 자동차 계약도 끝났고 그냥 넘어갈 수도 있는 일이었지만 한국인으로서 정말 그를 돕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일단 이름과 1953년에 전사했다는 사실을 가지고 참전 용사 사이트들을 검색해 봤더니 부산 유엔 기념공원에 유엔군 전몰용사 리스트가 있었고 마침내 그토록 찾던 이름을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사이트에는 묘비사진까지 올라와 있어서. 곧바로 사진을 현상하고 액자에 넣어 차를 찾으려온 엘리엇씨에게 액자를 선물하며 형의 묘지에 대한 정보도 알려주었습니다. 이 때 엘리엇씨의 감격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엘리엇씨는 눈물을 흘리며 연신 고맙다고 했지만 Lee씨는 오히려 당신의 형님 때문에 제가 있을 수 있었다고 고마움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가 Lee씨의 페이스북을 통해 알려지면서 정부에서도 알게 되었고 마침내 국가 보훈처에서 그를 한국에 초청했다고 하네요.
캐나다는 6.25때 미국, 영국에 이어 세 번째로 많은 2만 7천여 명을 파병해서 516명이 전사를 했습니다. 특별히 450명의 병력으로 1951년 4월 가평에서 6,000명이 넘는 중공군을 막아냄으로 남진을 저지하고 마침내 38선 이북으로 몰아낸 가평 전투가 잘 알려져 있습니다. R. D 엘리어트 일병은 휴전을 불과 3개월 앞 둔 1953년 4월 17일 스무 살의 꽃다운 나이로 전사했습니다. 6월은 호국보훈의 달입니다. 우리는 결코 그 은혜를 잊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이 자리에 있도록 피를 흘린 수많은 분들의 희생을...
삿 8:35 또 여룹바알이라 하는 기드온이 이스라엘에 베푼 모든 은혜를 따라 그의 집을 후대하지도 아니하였더라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부산광역시 남구 수영로 309 경성대학교 건학기념관 3층 경성대학교회
Copyright ⓒ 2009~2018 경성대학교회.All rights reserved. Design by 메이크디자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