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낌 없이 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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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24-10-14 12:03 조회42회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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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 법관이라 불린 김홍섭(1915-1965) 판사는 가난한 농부의 외아들로 태어나 아버지의 일을 도우며 서당에서 공부하다가 링컨의 전기를 읽고 법률가가 되기로 결심한다. 25살에 조선변호사 시험에 합격한 그는 1963년에 서울고등법원장이 된다. 그는 결혼 후 자신이 판결한 죄수들을 돌보느라 늘 쪼들리는 생활을 하였고 상의와 하의가 맞는 옷이 없었다고 한다. 정치권력에도 굴하지 않고 수사하기도 했으며 공사가 뚜렷했던 청백리였다. 고등법원장 시절 피고인 3명에게 사형을 선고하며 5분간 침묵을 지키다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였다. “하나님께서 보실 때 재판장인 내가 피고인인 여러분보다 더 큰 죄인인지 모릅니다.” 그리고 옥중의 사형수들을 찾아다니며 위로하고 전도하였다. “법상 어쩔 수 없이 판결을 내렸습니다만 정말 죄송합니다. 예수님을 영접하십시오.” 퇴임 후 수도원 종지기가 되기를 원했던 그는 50세에 간암으로 아내와 딸이 지켜보는 가운데 ‘행복한 삶이었다.’고 고백하며 눈을 감았다. 거리낌 없는 삶이 곧 행복을 주는 삶이 아닐까? ‘.....항상 양심에 거리낌이 없기를 힘쓰나이다’ (행2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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