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다섯째 주일 목회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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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현건 작성일18-07-28 15:57 조회11,863회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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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 칼럼
2018.7.29.
경성대학교회 박현건
사도 바울의 3차 전도 여행의 거점은 바울이 2차 전도 여행을 마칠 때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를 머물게 한 아시아의 에베소였습니다. 이 에베소에서 한 비문이 발견되었습니다. 이것은 1세기 중반 클라우디우스 황제 때의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거기에는 은세공업자와 은장색 판매상 길드에 대한 언급이 있어서 눈길을 끕니다. 그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습니다. “이 산 일대와 그 무덤은 은세공업자이자 판매상인 안토니우스 헤르메이아와 그 아내 클라우디아의 소유다. 앞서 말한 이를 제외하고 누구도 이 무덤을 묻힐 수 없다. 시체를 이곳에 두거나 이 글을 없애려는 자는 에베소의 은세공업자 길드에 1,000데나리온을 지불해야 한다. 이 무덤은 은세공업자 길드와 에로티오가 낸 5만 데나리온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이 글 외에도 은세공업자에 관련된 다른 비문 일곱 개가 더 있습니다. 한 비문에는 은세공업자들의 가게가 아르카디아네 거리에 밀집되어 있었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그 거리에는 에베소에서 유명했던 극장에서부터 하구까지 이어진 번화가였습니다.
이처럼 에베소의 은세공업자는 대단히 번영했고, 도시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컸습니다. 바울이 잠시 아시아에 더 머무르는 동안 소요가 일어났습니다. 이 소요의 주동자는 데메드리오였습니다. 그도 은으로 아데미 여신상을 만들어 장사하는 은세공업자였고, 길드에서 지도자적 역할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데메드리오는 자신의 부와 번영이 위협받을 것을 미리 내다보고, 이 위기를 넘기기 위해 종교적 열심을 부추겼습니다. 그는 바울과 그의 복음 전도 활동을 그대로 두면 위대한 여신 아데미의 위엄이 실추되고, 자신들은 그 신을 위하는 이들이 되지 못한다고 선동했습니다. 그러나 실상 그가 섬기는 것은 아데미가 아니라 탐욕이었습니다. 한편, 연극장에 몰려가는 수많은 사람들 중에 왜 그곳에 들어가는지 아는 사람은 데메드리오와 몇몇 사람뿐이었습니다. 2시간 동안이나 대중 회합에 참여했는데도 말입니다.
종교의 순수성을 오염시키는 것은 탐욕과 교만 그리고 군중심리라 할 수 있습니다. 우상을 따르는 자들은 이런 것에 이끌려 종교생활을 한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참 진리를 알고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자는 자기의 것을 내려놓은 자입니다. 그러므로 자기 유익을 위해 신앙생활하거나 시대의 트렌드에 함부로 휩쓸리지 않을 것입니다.
2018.7.29.
경성대학교회 박현건
사도 바울의 3차 전도 여행의 거점은 바울이 2차 전도 여행을 마칠 때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를 머물게 한 아시아의 에베소였습니다. 이 에베소에서 한 비문이 발견되었습니다. 이것은 1세기 중반 클라우디우스 황제 때의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거기에는 은세공업자와 은장색 판매상 길드에 대한 언급이 있어서 눈길을 끕니다. 그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습니다. “이 산 일대와 그 무덤은 은세공업자이자 판매상인 안토니우스 헤르메이아와 그 아내 클라우디아의 소유다. 앞서 말한 이를 제외하고 누구도 이 무덤을 묻힐 수 없다. 시체를 이곳에 두거나 이 글을 없애려는 자는 에베소의 은세공업자 길드에 1,000데나리온을 지불해야 한다. 이 무덤은 은세공업자 길드와 에로티오가 낸 5만 데나리온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이 글 외에도 은세공업자에 관련된 다른 비문 일곱 개가 더 있습니다. 한 비문에는 은세공업자들의 가게가 아르카디아네 거리에 밀집되어 있었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그 거리에는 에베소에서 유명했던 극장에서부터 하구까지 이어진 번화가였습니다.
이처럼 에베소의 은세공업자는 대단히 번영했고, 도시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컸습니다. 바울이 잠시 아시아에 더 머무르는 동안 소요가 일어났습니다. 이 소요의 주동자는 데메드리오였습니다. 그도 은으로 아데미 여신상을 만들어 장사하는 은세공업자였고, 길드에서 지도자적 역할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데메드리오는 자신의 부와 번영이 위협받을 것을 미리 내다보고, 이 위기를 넘기기 위해 종교적 열심을 부추겼습니다. 그는 바울과 그의 복음 전도 활동을 그대로 두면 위대한 여신 아데미의 위엄이 실추되고, 자신들은 그 신을 위하는 이들이 되지 못한다고 선동했습니다. 그러나 실상 그가 섬기는 것은 아데미가 아니라 탐욕이었습니다. 한편, 연극장에 몰려가는 수많은 사람들 중에 왜 그곳에 들어가는지 아는 사람은 데메드리오와 몇몇 사람뿐이었습니다. 2시간 동안이나 대중 회합에 참여했는데도 말입니다.
종교의 순수성을 오염시키는 것은 탐욕과 교만 그리고 군중심리라 할 수 있습니다. 우상을 따르는 자들은 이런 것에 이끌려 종교생활을 한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참 진리를 알고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자는 자기의 것을 내려놓은 자입니다. 그러므로 자기 유익을 위해 신앙생활하거나 시대의 트렌드에 함부로 휩쓸리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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