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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원에 묻힌 유일한 일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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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23-09-18 10:25 조회1,210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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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7년 일본 야마구치현에서 태어난 소다 가이치, 그는 탄광 광부로 일하다가 고학으로 초등학교 교사가 된다. 그리고 26세 때 세계를 경험하기 위해 화물선 선원이 되어 홍콩에서 타이완으로 건너갔다. 그곳에서 무절제한 삶을 살다가 마침내 술에 취해 길가에 쓰러져 의식을 잃게 되었는데 아무도 그를 거들떠보지 않았으나 누군가 그를 업고 여관으로 데려간 뒤 치료해 주고 여관비까지 내주었다. 객사할 뻔한 소다 가이치는 그 덕분에 목숨을 건졌지만 자신을 구해 준 사람의 이름도 몰랐다. 구해 준 뒤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한 가지 안 것은 그가 조선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그로부터 6년 뒤인 1905년, 그는 은인의 나라에 빚을 갚기 위해 조선으로 건너왔다. 월남 이상재 선생으로부터 감화를 받고 기독교 신자가 된 그는 독립지사들을 음양으로 도왔고 1921년부터는 고아들을 위해 헌신했다. 길에 버려진 아이들을 거두어 키운 숫자만 해도 해방이 될 때까지 1천 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해방 후 일본으로 돌아갔다가 1961년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고아들과 함께 살다가 9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양화진에 묻힌 그의 무덤의 묘지에는 ‘고아들의 자애로운 아버지’란 비문이 쓰여있다.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사랑했던 그의 삶의 기로에는 이름 모를 한 조선인, 선한 사마리아인이 있었다. 우리가 베푸는 선행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는 그 누구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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