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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22-04-25 11:18 조회1,604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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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대부분 두려워하는 것은 죽음입니다. 평소 건강에 자신만만한 분들도 무슨 악성 암이 발견되면 갑자기 삶이 무너지는 모습을 종종 보기도 합니다. 죽는 게 두렵지 않다고 큰 소리 치는 사람들도 막상 자신이 그런 상황이 되면 두려워하게 됩니다. 1980년 3월 불란서 파리의 부르세 병원에 한 세기를 풍미하던 한 지성인이 폐수종으로 입원했습니다. 그는 이 병원에서 문자 그대로 발악을 했습니다. 의사와 간호사에게 소리를 지르고 찾아온 사람들에게도 고함치며 몸부림쳤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는 죽음에 대한 공포와 불안 때문에 자기의 병명이 무엇인지를 자기 아내에게도 묻지 못했습니다. 이 사람은 자유라는 이름하에 수많은 수필을 쓰고 또한 주옥같은 글을 남기며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쳤던 실존주의 철학자 싸르트르였습니다. 그가 입원한 지 한 달 만에 병원에서 세상을 떠나자 프랑스 신문들이 이렇게 떠들기 시작했습니다. ‘싸르트르가 왜 이렇게 죽어야 하는가? 죽음으로부터의 자유를 그렇게도 외쳤던 그의 말로가 이렇게 비참했던 이유가 무엇인가?’
그때 한 독자가 신문사에 투고를 해서 이런 기사가 실렸다고 합니다. ‘싸르트르의 말로가 그렇게도 비참했던 이유는 싸르트르에게는 돌아갈 고향이 없었기 때문이다’
지난주에 우리는 부활절을 보냈습니다. 사실 부활절은 하루지만 부활의 소망은 우리가 주님 앞에 갈 때까지 간직할 소중한 것입니다. 내 집 없이도 이 땅에서 살아갈 수는 있지만 만일 죽고 나서 돌아갈 집이 없다면 그만큼 슬픈 일은 없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돌아갈 집이 없다는 사실도 모르고 이 땅에서 그저 더 좋은 집에 살기 위해 열을 올립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모르는 인생은 영원한 무주택자입니다. 단지 집이 없는 것뿐만 아니라 한 순간도 머물기 싫은 고통스런 곳에서 살게 될 비참한 homeless입니다. 우리는 방랑자가 아니라 순례자입니다. 방랑자는 집이 없지만 순례자는 언젠가 입주할 영원한 집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 땅에서 누릴 안락함을 잠시 보류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요 14:2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14:3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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