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심은 신앙의 디딤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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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송필오 작성일20-11-22 12:42 조회4,554회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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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1:6 그들 가운데는 유다 자손 곧 다니엘과 하나냐와 미사엘과 아사랴가 있었더니
1:7 환관장이 그들의 이름을 고쳐 다니엘은 벨드사살이라 하고 하나냐는 사드락이라 하고 미사엘은 메삭이라 하고 아사랴는 아벳느고라 하였더라
1:8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왕의 음식과 그가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하고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도록 환관장에게 구하니
1:9 하나님이 다니엘로 하여금 환관장에게 은혜와 긍휼을 얻게 하신지라
1:10 환관장이 다니엘에게 이르되 내가 내 주 왕을 두려워하노라 그가 너희 먹을 것과 너희 마실 것을 지정하셨거늘 너희의 얼굴이 초췌하여 같은 또래의 소년들만 못한 것을 그가 보게 할 것이 무엇이냐 그렇게 되면 너희 때문에 내 머리가 왕 앞에서 위태롭게 되리라 하니라
작심삼일(作心三日)이란 말이 있습니다. 이 ‘작심삼일’은 원래 두 가지 뜻이 있습니다. 먼저는 사흘을 두고 생각하고 생각한 끝에 비로소 결정한다는 뜻으로 신중함을 나타냅니다. 솔로몬 왕이 죽자 그 아들 르호보암 왕이 왕위에 올랐습니다. 그 때 백성들이 왕에게 와서 왕의 아버지가 지워준 고역과 무거운 짐을 가볍게 해 주면 왕을 섬기겠노라고 청원합니다. 르호보암 왕은 삼일 후에 오라고 하지요. 물론 삼일 후에 내린 지혜롭지 못한 판단으로 나라가 둘로 쪼개지고 말지만 보통 삼일정도 숙고하면 작심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작심삼일이란 고사 성어는 아시다시피 다른 뜻으로 훨씬 많이 쓰입니다. 그것은 아무리 굳게 결심해도 삼일을 못 간다는 말이지요. 베드로가 예수님을 죽어도 부인하지 않겠다고 했다가 금방 부인해 버린 것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혹시 올해 초에 결심한 내용을 기억할 수 있습니까? 내용을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무언가 결심은 하셨습니까? 아니면 결심조차 안하셨습니까? 결심이 우리 신앙생활에서도 중요한 것일까요? 오늘은 다니엘서를 중심으로 ‘결심’이란 주제를 가지고 나누고자 합니다
이제 다음 달이면 마지막 달인 12월입니다. 년 말에는 지난 일 년을 돌아보게 되고 새해에는 보통 새로운 결심을 하게 되지요. 그런데 년초에는 장밋빛으로 출발했다가 많은 경우 일주일도 못가서 그 결심을 까마득히 잊어버리고 맙니다. 통계적으로 보면 결심한 지 일주일 안에 20%, 한 달 안에 40%가 포기하고 그리고 갈수록 결심과 동떨어진 삶을 살아가게 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10대에서 30대까지 연령에서 결심을 잘 지키지 못하는 이유를 조사해보니 1위가 의지가 약해서였고 2위가 구체적인 계획이 없어서였답니다. 사람들은 왜 결심이 잘 지켜지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매년 새로운 결심을 하게 될까요? 심리학자인 존 더피 박사는 ‘새해는 스스로 변화를 준비하기 위한 시간과 목표를 제공한다.’고 말했습니다. 새해의 결심은 모든 일을 새로 시작할 수 있고 올해에는 좀 나을거야라는 희망을 갖게 하지요. 그런데 자기가 결심한 것을 지키지 않는 것은 사실 별 유익이 없습니다.
때로는 결심이 자칫 옆길로 빠지는 것을 방지하는 경고등이 될 수 있습니다. 제가 군에 입대해서 훈련을 마친 후 강원도 최전방에 배치가 되었습니다. 막상 도착해보니 순박한 시골이었지만 군대들이 주둔하는 곳이라 술집이 많고 문란한 문화가 스며있었습니다. 도착하자마자 인근 부대에서 전역하는 장교들과 저 같은 신임들이 함께 만나 식사를 같이하며 환영 및 환송파티를 하게 되었는데 1차까지는 좋았지만 2차가 문제였습니다. 술집을 향하게 되었지요. 술집에 술 마시지 않고 같이 앉아 있는 것까지는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았지만 앉아 있기만 해서는 안 되는 장소라는 것을 알게 되었지요. 저는 들어가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그 때 저와 같은 입대 동기가 제게 와서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나도 교회에 다니지만 이런 자리를 피하기보다 그런 자리에 앉아 있으면서도 유혹에 빠지지 않는 것이 훨씬 강한 믿음이라고 생각하는데?’ 논리적으로 아주 그럴 듯한 말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성경적이 아니었습니다. 그 때 떠오른 말씀이 이 말씀이었습니다.
잠 4:14 사악한 자의 길에 들어가지 말며 악인의 길로 다니지 말지어다
4:15 그의 길을 피하고 지나가지 말며 돌이켜 떠나갈지어다
사단은 싸워야 할 대상이지만 유혹은 피하고 도망가야 할 대상이었습니다. 결국 혼자 외톨이가 되어 밖에 있는 희미한 가로등 밑에 서서 끝날 때까지 밤늦도록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외롭지 않았습니다. 주님이 함께 해 주시는 편이 훨씬 좋은 선택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 이후에도 여러 유혹의 순간에 그 일이 떠올라 결심을 이어가는 일에 도움이 되었습니다.
우리의 결심은 작심삼일처럼 오래가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심을 하는 것이 결심을 하지 않는 것보다 훨씬 낫습니다. 오늘 말씀을 볼까요? 남유다가 바벨론에 의해 멸망당할 때 3차에 걸쳐서 포로로 끌려가게 되는데 1차 때인 BC 605년 경, 다니엘을 포함한 유다의 왕족들과 귀족들이 인질로 바벨론에 끌려갔습니다. 당시 다니엘은 어린 청소년의 나이였을 것입니다. 바벨론 정부는 다양한 민족으로 구성된 제국을 효과적으로 통치하기 위해 끌어온 포로 중에서 똑똑한 자들을 선발하여 재교육을 실시하였습니다.
특별히 이 가운데 다니엘과 함께 세 친구가 뽑혔는데 먼저 그들의 이름이 개명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심판하신다’는 의미의 다니엘은 ‘여신이여 보호하소서’라는 뜻의 ‘벨드사살’로 바꾸었습니다. 이름을 바꾼 것은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새 이름을 준 바벨론의 신들에게 복종할 것을 의미했습니다. 어린 나이에 다니엘과 세 친구는 지배국의 이질적인 이교 문화 속에서 엄청난 압력을 받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다니엘은 순응하지 않았습니다. 1장 8절을 보겠습니다.
1:8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왕의 음식과 그가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하고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도록 환관장에게 구하니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 )하고’ 이 사이에 한 단어를 넣는다면 어떤 말을 넣을 수 있을까요? 영어 성경을 참고해 보겠습니다. NIV는 resolved라고 번역하고 있고 NASB는 made up his mind로 번역합니다. 한 마디로 결심했다는 것이지요. 다니엘은 왕의 음식과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않겠다고 결심했다는 것입니다. 왜 왕의 음식을 먹고 포도주를 마시는 게 문제가 된 것일까요? 바벨론사람들은 다른 이방 나라 사람들처럼 구약 율법에서 금한 부정한 음식을 자유로 먹었습니다. 이 음식 중에는 돼지고기를 포함해서 여러 금지된 것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피와 같이 먹지 말라는 율법에 반하여 피가 완전히 제거되지도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왕이 먹을 음식과 포도주 중에서는 자신이 섬기던 우상에게 바쳐진 것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다니엘은 음식과 포도주로 신앙의 순결을 더럽히지 않겠다고 결심했고 그 결심을 실행에 옮겼습니다.
보통 결심하는 것도 쉽지 않지만 그 결심을 실행하는 것도 어렵습니다. 하지만 결심만 가지고는 목표를 이룰 수 없습니다. 즉 실행이 필요합니다. 어느 여름날 오후 개구리 세 마리가 나뭇잎에 올라탄 채 강물에 떠내려가고 있었습니다. 강 중간쯤에서 한 마리의 개구리가 일어나 결심했다는 듯이 단호하게 외쳤습니다. ‘너무 더워, 난 강물에 뛰어들 테야!’ 조금 후 나뭇잎에 몇 마리가 남아 있었을까요? 두 마리?, 한 마리? 정답은 세 마리입니다. 뛰어든 개구리가 한 마리도 없었다는 것이지요. 뛰어 들겠다는 결심과 실행은 다른 차원이기 때문이지요. 이 이야기는 베스트셀러 ‘마시멜로 이야기’란 책 도입부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또 다른 실제적인 예를 들어볼까요? 제가 요사이 계속 QT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우리 대부분 하나님과 아침 첫 시간에 말씀을 읽고 기도하며 기록하는 QT가 중요하다는 것을 압니다. 하지만 단지 중요성을 아는 것만으로 실제로 QT를 하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결심이 필요합니다. ‘올 한 해 동안 매일 QT를 가지겠다.’ 그런데 이 결심만 가지고 있으면 작심삼일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실행이 필요합니다. 결심이 마음의 시작이라면 실행은 행동의 시작입니다. 예를 든다면 QT를 가지기 위해서 일단 아침 6시전에 일어난다든지 자기전에 다음날 하게 될 QT 본문을 미리 한 번 읽는 것이지요. 실행은 너무 높은 목표가 아닌 작은 목표부터 시작해 보는 것이 효과적입니다.
보통 결심을 지킬 수 있는 효과적 방법 중 하나로 ‘목표 쪼개기’라는 방법이 있습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예를 들어 우리가 개울을 건널 때에 징검다리를 사용합니다. 그런데 성미가 좀 급한 사람은 징검다리를 무시하고 한 번에 건너편으로 건너뛰거나 아니면 몇 개를 건너뛰고 싶어 합니다. 그러다가 미끄러져 물에 풍덩 빠져버리는 경우가 있지요. 만일 차근차근 징검다리 하나씩 발을 디디면 안전하게 목표점에 도달하기가 훨씬 쉽습니다. 마찬가지로 결심을 했다면 그 결심에 도달하기 위한 목표를 몇 개의 징검다리로 쪼개어 만들면 도움이 됩니다. 한 발씩 한 발씩 나아갈 수 있도록....예를 든다면 매일 QT를 하기 위해서 이번 주에는 두 번 이상 해 보고 다음 주는 세 번 이상 해보자는 것입니다. 좀 전에 밀씀드렸듯이 처음에는 조금 낮은 목표를 세우는 것이 좋습니다.
다니엘은 결심하고 한 번에 끝내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먼저 자신을 관리하던 책임자에게 가서 양해를 구했습니다. 그렇게 했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요? 9절을 보겠습니다.
단 1:9 하나님이 다니엘로 하여금 환관장에게 은혜와 긍휼을 얻게 하신지라
이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매우 큽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뜻을 따라 결심하고 실행하는 사람에게 은혜와 긍휼을 베푸신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을 사모합니다. 그 은혜와 긍휼을 경험하고 싶어 합니다. 그렇다면 먼저 결심하십시오. 그리고 작은 발걸음을 한 번 옮겨 보십시오. 하나님은 결심하고 실행하는 이에게 은혜와 긍휼을 베푸십니다. 그냥 감나무 밑에서 저절로 감이 떨어지기를 바라는 사람 입에 감을 넣어주시지는 않으십니다.
그런데 다니엘이 요청을 했을 때 책임자는 큰 부담을 느꼈습니다. 왜냐하면 소년들의 건강에 대해 자신이 모든 책임을 지는 입장이었고 만약 문제가 생기면 자칫 자신의 목숨이 위태로울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다니엘은 지혜롭게 목표를 향한 징검다리 하나를 놓았습니다. ‘열흘만 우리를 테스트해 보십시오. 그 후로 당신의 처분에 따르겠습니다.’라고 중간안을 제시한 것입니다. 다니엘은 책임자에게 부담을 줄이면서도 자신들이 전심으로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며 기도할 시간을 벌었습니다. 만일 다니엘이 이렇게 결심하고 실행하지 않았더라면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 문화 속에서 끊임없는 갈등과 고통을 겪으며 살아야 했을 것입니다. 결단은 대부분 크고 작은 고통을 수반합니다. 하지만 그 결과는 자유입니다. 만일 당장 치르는 대가를 두려워하여 결단하지 않으면 더 긴 시간동안 더 큰 고통을 안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결심은 성장의 디딤돌입니다. 디딤돌을 밟지 않으면 올라설 수 없듯이 우리가 결심하지 않으면 영적으로 성장할 기회를 잃게 됩니다. 18세기 미국의 제 1차 영적 대각성 때 놀랍게 쓰임 받은 조나단 에드워즈는 미국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목사와 신학자 중 한 사람이었고 다양한 분야의 특별한 재능을 갖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만든 70개의 결심문이 있습니다. 이것은 놀랍게도 18세부터 20세까지 만든 것으로 그는 평생 이 결심문을 지키려고 애썼습니다. 그는 먼저 이렇게 기록합니다.
‘나는 하나님의 도움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을 알고 있기 때문에 이 결심문이 하나님의 뜻에 일치하는 한 하나님의 은혜로 제가 이 결심문을 지킬 수 있도록 내게 능력 주시기를 겸손하게 하나님께 간청합니다.’
우리는 한 가지 중요한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결심하지만 우리의 힘과 노력만으로 그 결심을 이루려고 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그러므로 결심을 지킬 수 있도록 능력주시는 하나님을 늘 의뢰해야 합니다. 베드로전서 4장 11절입니다.
벧전 4:11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하도록 있느니라 아멘
우리 힘으로 결심을 이루면 우리 자랑이 되기 쉽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 힘으로 하는 것이 쉽겠습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능력으로 하는 것이 쉽겠습니까? 만일 우리가 우리 힘으로 하면 작심삼일이라도 하나님의 도우시는 힘으로 한다면 끝까지 갈 수가 있습니다. 에드워즈의 결심문 70개 중에서 몇 개를 소개하면 이렇습니다.
1. 나의 전 생애 동안 하나님의 영광과 나 자신의 행복과 유익과 기쁨을 위해 최상의 도움이 되는 것이면 무엇이든지 하자.
2. 혹시라도 내가 넘어지고 점점 무감각해져서 이 결심문 중의 어떤 내용을 지키지 못하게 된다면, 다시 제 정신이 돌아왔을 때 내가 기억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회개하자.
3. 하나님의 영광에 도움이 안 되는 것이라면 영혼에 관계된 것이든지 육체에 관계된 것이든지 또는 적든지 많든지 간에 어떤 것이라도 절대로 하지 말자.
4. 한 순간의 시간도 절대로 낭비하지 말고 그 시간을 가능한 한 최대로 유익하게 사용하자.
5. 만일 내 생애의 최후 순간이라고 가정했을 때, 하기가 꺼려지는 것이면 절대로 하지 말자.
6. 절대로 다른 사람을 비방하지 말자
7. 먹고 마시는 것은 엄격하게 절제하며 살자
8. 고난 후에는 고난으로 인해 내가 더 나아진 점이 무엇인지 어떤 유익을 얻었는지 묻도록 하자
이런 결심이 70개나 된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결심은 우리 삶의 방향을 보게 하고 목표를 벗어났을 때 재조정해주지요.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무언가 결심하고 실행한다면 하나님께서 도우실 것입니다. 다시 다니엘 이야기로 돌아갑니다. 남유다를 멸망시킨 바벨론은 결국 망하고 페르시아 제국이 들어서게 됩니다. 나라를 재정비하기 원했던 다리오 왕은 세 명의 총리 중 한 명으로 다니엘을 기용을 합니다. 이 때 다니엘의 나이는 80세가 넘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다리오 왕이 다스리던 첫 해에 다니엘은 예레미야서를 연구하면서 포로생활 70년의 끝이 가까웠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그는 기도하기 시작하지요.
단 9:3 내가 금식하며 베옷을 입고 재를 덮어쓰고 주 하나님께 기도하며 간구하기를 결심하고
다니엘은 주 하나님께 기도하며 간구하기를 결심했습니다. 기도가 보통 쉽지 않다고 합니다. 사실 저도 어렵습니다. 하지만 기도를 지속하기 위해서는 결심이 필요합니다. ‘내가 이 문제를 놓고 매일 아침에 기도하겠다.’ 기도를 결심하지 않고 기도 응답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어떤 일을 명확하게 이루기 위해서는 명확한 결심이 필요합니다. 예수님도 십자가를 앞두고 결심하셨습니다.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눅 9:51 예수께서 승천하실 기약이 차가매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가기로 굳게 결심하시고
예수님께서 이제 승천하실 시점이 다가왔습니다. 승천은 죽음을 전제로 한 것이지요. 주님은 바로 자신의 죽음을 앞두고 굳은 결심으로 예루살렘을 향해 발길을 옮기셨습니다. 굳은 결심이 아니고야 어찌 그 죽음의 길을 걸어가실 수 있을까요? 다니엘도 비슷한 경험을 했습니다. 왕 외에 다른 신에게 기도하면 사자 굴에 들어간다는 법령이 통과된 것을 알고도 평상시 하던 대로 기도하리라 결심하고 실행에 옮겼습니다. 한 마디로 죽음을 불사한 결심이었지요. 중요한 일일수록 이처럼 단호한 결심이 필요합니다. 그냥 막연한 결심으로는 작심삼일이 되기 쉽습니다.
이제 마지막 이야기입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 이야기로 이번 주 QT에 나오는 내용이죠. 바벨론 제국의 느부갓네살 왕은 두라 평지라는 곳에 무려 27m 되는 금 신상을 세워놓고 제국의 고위 관리와 지방 관료들을 모아 낙성식을 거행했습니다. 악기들을 총동원하여 소리를 낼 때 참석한 모든 사람들은 신상에게 절해야 했고 만일 엎드려 절하지 않는 자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용광로 불구덩이에 던져 넣는다는 추상같은 명령이 떨어졌습니다. 하지만 다니엘의 세 친구는 왕의 명령을 따르기를 거부했습니다. 화가 난 왕이 그들을 한 번 설득했지만 그들은 요지부동으로 왕에게 대답할 필요조차 없다고 단호하게 대답합니다. 그리고 만일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면 우리를 용광로 불과 왕의 손에서 건져내실 것이라고 하면서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합니다.
단 3:18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이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분노한 왕이 평소보다 일곱 배나 뜨겁게 달군 용광로에 그들을 결박하여 던지도록 했지만 그들은 머리카락 하나도 타지 않았습니다. 왕을 더 놀라게 한 것은 분명 세 명을 던졌지만 불 속에 네 명이 있는 것이었고 그 중 한 사람은 신적인 존재로 보였다는 것입니다. 그들 중에 주님이 오셔서 함께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주님을 위한 결심과 실행을 귀하게 여기십니다. 비록 우리의 결심 때문에 크고 작은 어려움을 겪게 된다 해도 하나님이 함께 하십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곳이라면 불 속에라도 들어가겠다는 결심속에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가 함께 하시리라 믿습니다.
우리는 다니엘이나 다니엘의 세 친구처럼 결심을 통한 드라마틱한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기란 쉽지 않을 것입니다. 시대와 환경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 앞에서 작은 결심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작은 결심들이 모여 큰 결심이 될 것입니다. ‘아침에 QT는 짧더라도 빠지지 않는다. 하루에 가족과 교회를 위해서 꼭 기도한다. 만나는 사람들에게 좋은 인상을 선물한다. 내 가족 친구들이 예수님을 믿도록 날마다 기도한다. 일주일에 한 번 복음을 전하겠다.’ 작은 개울이 모여 강이 되고 강이 모여 바다가 되듯이 작은 결심이 모여 큰 결심이 되고 어느 듯 나도 모르게 믿음의 선배들이 경험한 그 길을 따라 걷고 있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결심은 내 힘으로만 실행할 수 없습니다. 오직 주님의 능력이 필요합니다. 주님의 뜻을 따라 결심하고 주님 의뢰하며 또 결심하고 주님을 의뢰하면서 이 땅에서 목적없이 안주하는 삶을 벗어나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을 경험하며 마지막 때에 주님 오실 날을 부끄럼 없이 준비하는 모든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1:7 환관장이 그들의 이름을 고쳐 다니엘은 벨드사살이라 하고 하나냐는 사드락이라 하고 미사엘은 메삭이라 하고 아사랴는 아벳느고라 하였더라
1:8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왕의 음식과 그가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하고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도록 환관장에게 구하니
1:9 하나님이 다니엘로 하여금 환관장에게 은혜와 긍휼을 얻게 하신지라
1:10 환관장이 다니엘에게 이르되 내가 내 주 왕을 두려워하노라 그가 너희 먹을 것과 너희 마실 것을 지정하셨거늘 너희의 얼굴이 초췌하여 같은 또래의 소년들만 못한 것을 그가 보게 할 것이 무엇이냐 그렇게 되면 너희 때문에 내 머리가 왕 앞에서 위태롭게 되리라 하니라
작심삼일(作心三日)이란 말이 있습니다. 이 ‘작심삼일’은 원래 두 가지 뜻이 있습니다. 먼저는 사흘을 두고 생각하고 생각한 끝에 비로소 결정한다는 뜻으로 신중함을 나타냅니다. 솔로몬 왕이 죽자 그 아들 르호보암 왕이 왕위에 올랐습니다. 그 때 백성들이 왕에게 와서 왕의 아버지가 지워준 고역과 무거운 짐을 가볍게 해 주면 왕을 섬기겠노라고 청원합니다. 르호보암 왕은 삼일 후에 오라고 하지요. 물론 삼일 후에 내린 지혜롭지 못한 판단으로 나라가 둘로 쪼개지고 말지만 보통 삼일정도 숙고하면 작심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작심삼일이란 고사 성어는 아시다시피 다른 뜻으로 훨씬 많이 쓰입니다. 그것은 아무리 굳게 결심해도 삼일을 못 간다는 말이지요. 베드로가 예수님을 죽어도 부인하지 않겠다고 했다가 금방 부인해 버린 것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혹시 올해 초에 결심한 내용을 기억할 수 있습니까? 내용을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무언가 결심은 하셨습니까? 아니면 결심조차 안하셨습니까? 결심이 우리 신앙생활에서도 중요한 것일까요? 오늘은 다니엘서를 중심으로 ‘결심’이란 주제를 가지고 나누고자 합니다
이제 다음 달이면 마지막 달인 12월입니다. 년 말에는 지난 일 년을 돌아보게 되고 새해에는 보통 새로운 결심을 하게 되지요. 그런데 년초에는 장밋빛으로 출발했다가 많은 경우 일주일도 못가서 그 결심을 까마득히 잊어버리고 맙니다. 통계적으로 보면 결심한 지 일주일 안에 20%, 한 달 안에 40%가 포기하고 그리고 갈수록 결심과 동떨어진 삶을 살아가게 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10대에서 30대까지 연령에서 결심을 잘 지키지 못하는 이유를 조사해보니 1위가 의지가 약해서였고 2위가 구체적인 계획이 없어서였답니다. 사람들은 왜 결심이 잘 지켜지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매년 새로운 결심을 하게 될까요? 심리학자인 존 더피 박사는 ‘새해는 스스로 변화를 준비하기 위한 시간과 목표를 제공한다.’고 말했습니다. 새해의 결심은 모든 일을 새로 시작할 수 있고 올해에는 좀 나을거야라는 희망을 갖게 하지요. 그런데 자기가 결심한 것을 지키지 않는 것은 사실 별 유익이 없습니다.
때로는 결심이 자칫 옆길로 빠지는 것을 방지하는 경고등이 될 수 있습니다. 제가 군에 입대해서 훈련을 마친 후 강원도 최전방에 배치가 되었습니다. 막상 도착해보니 순박한 시골이었지만 군대들이 주둔하는 곳이라 술집이 많고 문란한 문화가 스며있었습니다. 도착하자마자 인근 부대에서 전역하는 장교들과 저 같은 신임들이 함께 만나 식사를 같이하며 환영 및 환송파티를 하게 되었는데 1차까지는 좋았지만 2차가 문제였습니다. 술집을 향하게 되었지요. 술집에 술 마시지 않고 같이 앉아 있는 것까지는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았지만 앉아 있기만 해서는 안 되는 장소라는 것을 알게 되었지요. 저는 들어가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그 때 저와 같은 입대 동기가 제게 와서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나도 교회에 다니지만 이런 자리를 피하기보다 그런 자리에 앉아 있으면서도 유혹에 빠지지 않는 것이 훨씬 강한 믿음이라고 생각하는데?’ 논리적으로 아주 그럴 듯한 말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성경적이 아니었습니다. 그 때 떠오른 말씀이 이 말씀이었습니다.
잠 4:14 사악한 자의 길에 들어가지 말며 악인의 길로 다니지 말지어다
4:15 그의 길을 피하고 지나가지 말며 돌이켜 떠나갈지어다
사단은 싸워야 할 대상이지만 유혹은 피하고 도망가야 할 대상이었습니다. 결국 혼자 외톨이가 되어 밖에 있는 희미한 가로등 밑에 서서 끝날 때까지 밤늦도록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외롭지 않았습니다. 주님이 함께 해 주시는 편이 훨씬 좋은 선택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 이후에도 여러 유혹의 순간에 그 일이 떠올라 결심을 이어가는 일에 도움이 되었습니다.
우리의 결심은 작심삼일처럼 오래가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심을 하는 것이 결심을 하지 않는 것보다 훨씬 낫습니다. 오늘 말씀을 볼까요? 남유다가 바벨론에 의해 멸망당할 때 3차에 걸쳐서 포로로 끌려가게 되는데 1차 때인 BC 605년 경, 다니엘을 포함한 유다의 왕족들과 귀족들이 인질로 바벨론에 끌려갔습니다. 당시 다니엘은 어린 청소년의 나이였을 것입니다. 바벨론 정부는 다양한 민족으로 구성된 제국을 효과적으로 통치하기 위해 끌어온 포로 중에서 똑똑한 자들을 선발하여 재교육을 실시하였습니다.
특별히 이 가운데 다니엘과 함께 세 친구가 뽑혔는데 먼저 그들의 이름이 개명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심판하신다’는 의미의 다니엘은 ‘여신이여 보호하소서’라는 뜻의 ‘벨드사살’로 바꾸었습니다. 이름을 바꾼 것은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새 이름을 준 바벨론의 신들에게 복종할 것을 의미했습니다. 어린 나이에 다니엘과 세 친구는 지배국의 이질적인 이교 문화 속에서 엄청난 압력을 받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다니엘은 순응하지 않았습니다. 1장 8절을 보겠습니다.
1:8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왕의 음식과 그가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하고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도록 환관장에게 구하니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 )하고’ 이 사이에 한 단어를 넣는다면 어떤 말을 넣을 수 있을까요? 영어 성경을 참고해 보겠습니다. NIV는 resolved라고 번역하고 있고 NASB는 made up his mind로 번역합니다. 한 마디로 결심했다는 것이지요. 다니엘은 왕의 음식과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않겠다고 결심했다는 것입니다. 왜 왕의 음식을 먹고 포도주를 마시는 게 문제가 된 것일까요? 바벨론사람들은 다른 이방 나라 사람들처럼 구약 율법에서 금한 부정한 음식을 자유로 먹었습니다. 이 음식 중에는 돼지고기를 포함해서 여러 금지된 것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피와 같이 먹지 말라는 율법에 반하여 피가 완전히 제거되지도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왕이 먹을 음식과 포도주 중에서는 자신이 섬기던 우상에게 바쳐진 것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다니엘은 음식과 포도주로 신앙의 순결을 더럽히지 않겠다고 결심했고 그 결심을 실행에 옮겼습니다.
보통 결심하는 것도 쉽지 않지만 그 결심을 실행하는 것도 어렵습니다. 하지만 결심만 가지고는 목표를 이룰 수 없습니다. 즉 실행이 필요합니다. 어느 여름날 오후 개구리 세 마리가 나뭇잎에 올라탄 채 강물에 떠내려가고 있었습니다. 강 중간쯤에서 한 마리의 개구리가 일어나 결심했다는 듯이 단호하게 외쳤습니다. ‘너무 더워, 난 강물에 뛰어들 테야!’ 조금 후 나뭇잎에 몇 마리가 남아 있었을까요? 두 마리?, 한 마리? 정답은 세 마리입니다. 뛰어든 개구리가 한 마리도 없었다는 것이지요. 뛰어 들겠다는 결심과 실행은 다른 차원이기 때문이지요. 이 이야기는 베스트셀러 ‘마시멜로 이야기’란 책 도입부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또 다른 실제적인 예를 들어볼까요? 제가 요사이 계속 QT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우리 대부분 하나님과 아침 첫 시간에 말씀을 읽고 기도하며 기록하는 QT가 중요하다는 것을 압니다. 하지만 단지 중요성을 아는 것만으로 실제로 QT를 하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결심이 필요합니다. ‘올 한 해 동안 매일 QT를 가지겠다.’ 그런데 이 결심만 가지고 있으면 작심삼일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실행이 필요합니다. 결심이 마음의 시작이라면 실행은 행동의 시작입니다. 예를 든다면 QT를 가지기 위해서 일단 아침 6시전에 일어난다든지 자기전에 다음날 하게 될 QT 본문을 미리 한 번 읽는 것이지요. 실행은 너무 높은 목표가 아닌 작은 목표부터 시작해 보는 것이 효과적입니다.
보통 결심을 지킬 수 있는 효과적 방법 중 하나로 ‘목표 쪼개기’라는 방법이 있습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예를 들어 우리가 개울을 건널 때에 징검다리를 사용합니다. 그런데 성미가 좀 급한 사람은 징검다리를 무시하고 한 번에 건너편으로 건너뛰거나 아니면 몇 개를 건너뛰고 싶어 합니다. 그러다가 미끄러져 물에 풍덩 빠져버리는 경우가 있지요. 만일 차근차근 징검다리 하나씩 발을 디디면 안전하게 목표점에 도달하기가 훨씬 쉽습니다. 마찬가지로 결심을 했다면 그 결심에 도달하기 위한 목표를 몇 개의 징검다리로 쪼개어 만들면 도움이 됩니다. 한 발씩 한 발씩 나아갈 수 있도록....예를 든다면 매일 QT를 하기 위해서 이번 주에는 두 번 이상 해 보고 다음 주는 세 번 이상 해보자는 것입니다. 좀 전에 밀씀드렸듯이 처음에는 조금 낮은 목표를 세우는 것이 좋습니다.
다니엘은 결심하고 한 번에 끝내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먼저 자신을 관리하던 책임자에게 가서 양해를 구했습니다. 그렇게 했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요? 9절을 보겠습니다.
단 1:9 하나님이 다니엘로 하여금 환관장에게 은혜와 긍휼을 얻게 하신지라
이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매우 큽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뜻을 따라 결심하고 실행하는 사람에게 은혜와 긍휼을 베푸신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을 사모합니다. 그 은혜와 긍휼을 경험하고 싶어 합니다. 그렇다면 먼저 결심하십시오. 그리고 작은 발걸음을 한 번 옮겨 보십시오. 하나님은 결심하고 실행하는 이에게 은혜와 긍휼을 베푸십니다. 그냥 감나무 밑에서 저절로 감이 떨어지기를 바라는 사람 입에 감을 넣어주시지는 않으십니다.
그런데 다니엘이 요청을 했을 때 책임자는 큰 부담을 느꼈습니다. 왜냐하면 소년들의 건강에 대해 자신이 모든 책임을 지는 입장이었고 만약 문제가 생기면 자칫 자신의 목숨이 위태로울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다니엘은 지혜롭게 목표를 향한 징검다리 하나를 놓았습니다. ‘열흘만 우리를 테스트해 보십시오. 그 후로 당신의 처분에 따르겠습니다.’라고 중간안을 제시한 것입니다. 다니엘은 책임자에게 부담을 줄이면서도 자신들이 전심으로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며 기도할 시간을 벌었습니다. 만일 다니엘이 이렇게 결심하고 실행하지 않았더라면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 문화 속에서 끊임없는 갈등과 고통을 겪으며 살아야 했을 것입니다. 결단은 대부분 크고 작은 고통을 수반합니다. 하지만 그 결과는 자유입니다. 만일 당장 치르는 대가를 두려워하여 결단하지 않으면 더 긴 시간동안 더 큰 고통을 안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결심은 성장의 디딤돌입니다. 디딤돌을 밟지 않으면 올라설 수 없듯이 우리가 결심하지 않으면 영적으로 성장할 기회를 잃게 됩니다. 18세기 미국의 제 1차 영적 대각성 때 놀랍게 쓰임 받은 조나단 에드워즈는 미국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목사와 신학자 중 한 사람이었고 다양한 분야의 특별한 재능을 갖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만든 70개의 결심문이 있습니다. 이것은 놀랍게도 18세부터 20세까지 만든 것으로 그는 평생 이 결심문을 지키려고 애썼습니다. 그는 먼저 이렇게 기록합니다.
‘나는 하나님의 도움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을 알고 있기 때문에 이 결심문이 하나님의 뜻에 일치하는 한 하나님의 은혜로 제가 이 결심문을 지킬 수 있도록 내게 능력 주시기를 겸손하게 하나님께 간청합니다.’
우리는 한 가지 중요한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결심하지만 우리의 힘과 노력만으로 그 결심을 이루려고 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그러므로 결심을 지킬 수 있도록 능력주시는 하나님을 늘 의뢰해야 합니다. 베드로전서 4장 11절입니다.
벧전 4:11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하도록 있느니라 아멘
우리 힘으로 결심을 이루면 우리 자랑이 되기 쉽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 힘으로 하는 것이 쉽겠습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능력으로 하는 것이 쉽겠습니까? 만일 우리가 우리 힘으로 하면 작심삼일이라도 하나님의 도우시는 힘으로 한다면 끝까지 갈 수가 있습니다. 에드워즈의 결심문 70개 중에서 몇 개를 소개하면 이렇습니다.
1. 나의 전 생애 동안 하나님의 영광과 나 자신의 행복과 유익과 기쁨을 위해 최상의 도움이 되는 것이면 무엇이든지 하자.
2. 혹시라도 내가 넘어지고 점점 무감각해져서 이 결심문 중의 어떤 내용을 지키지 못하게 된다면, 다시 제 정신이 돌아왔을 때 내가 기억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회개하자.
3. 하나님의 영광에 도움이 안 되는 것이라면 영혼에 관계된 것이든지 육체에 관계된 것이든지 또는 적든지 많든지 간에 어떤 것이라도 절대로 하지 말자.
4. 한 순간의 시간도 절대로 낭비하지 말고 그 시간을 가능한 한 최대로 유익하게 사용하자.
5. 만일 내 생애의 최후 순간이라고 가정했을 때, 하기가 꺼려지는 것이면 절대로 하지 말자.
6. 절대로 다른 사람을 비방하지 말자
7. 먹고 마시는 것은 엄격하게 절제하며 살자
8. 고난 후에는 고난으로 인해 내가 더 나아진 점이 무엇인지 어떤 유익을 얻었는지 묻도록 하자
이런 결심이 70개나 된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결심은 우리 삶의 방향을 보게 하고 목표를 벗어났을 때 재조정해주지요.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무언가 결심하고 실행한다면 하나님께서 도우실 것입니다. 다시 다니엘 이야기로 돌아갑니다. 남유다를 멸망시킨 바벨론은 결국 망하고 페르시아 제국이 들어서게 됩니다. 나라를 재정비하기 원했던 다리오 왕은 세 명의 총리 중 한 명으로 다니엘을 기용을 합니다. 이 때 다니엘의 나이는 80세가 넘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다리오 왕이 다스리던 첫 해에 다니엘은 예레미야서를 연구하면서 포로생활 70년의 끝이 가까웠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그는 기도하기 시작하지요.
단 9:3 내가 금식하며 베옷을 입고 재를 덮어쓰고 주 하나님께 기도하며 간구하기를 결심하고
다니엘은 주 하나님께 기도하며 간구하기를 결심했습니다. 기도가 보통 쉽지 않다고 합니다. 사실 저도 어렵습니다. 하지만 기도를 지속하기 위해서는 결심이 필요합니다. ‘내가 이 문제를 놓고 매일 아침에 기도하겠다.’ 기도를 결심하지 않고 기도 응답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어떤 일을 명확하게 이루기 위해서는 명확한 결심이 필요합니다. 예수님도 십자가를 앞두고 결심하셨습니다.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눅 9:51 예수께서 승천하실 기약이 차가매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가기로 굳게 결심하시고
예수님께서 이제 승천하실 시점이 다가왔습니다. 승천은 죽음을 전제로 한 것이지요. 주님은 바로 자신의 죽음을 앞두고 굳은 결심으로 예루살렘을 향해 발길을 옮기셨습니다. 굳은 결심이 아니고야 어찌 그 죽음의 길을 걸어가실 수 있을까요? 다니엘도 비슷한 경험을 했습니다. 왕 외에 다른 신에게 기도하면 사자 굴에 들어간다는 법령이 통과된 것을 알고도 평상시 하던 대로 기도하리라 결심하고 실행에 옮겼습니다. 한 마디로 죽음을 불사한 결심이었지요. 중요한 일일수록 이처럼 단호한 결심이 필요합니다. 그냥 막연한 결심으로는 작심삼일이 되기 쉽습니다.
이제 마지막 이야기입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 이야기로 이번 주 QT에 나오는 내용이죠. 바벨론 제국의 느부갓네살 왕은 두라 평지라는 곳에 무려 27m 되는 금 신상을 세워놓고 제국의 고위 관리와 지방 관료들을 모아 낙성식을 거행했습니다. 악기들을 총동원하여 소리를 낼 때 참석한 모든 사람들은 신상에게 절해야 했고 만일 엎드려 절하지 않는 자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용광로 불구덩이에 던져 넣는다는 추상같은 명령이 떨어졌습니다. 하지만 다니엘의 세 친구는 왕의 명령을 따르기를 거부했습니다. 화가 난 왕이 그들을 한 번 설득했지만 그들은 요지부동으로 왕에게 대답할 필요조차 없다고 단호하게 대답합니다. 그리고 만일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면 우리를 용광로 불과 왕의 손에서 건져내실 것이라고 하면서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합니다.
단 3:18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이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분노한 왕이 평소보다 일곱 배나 뜨겁게 달군 용광로에 그들을 결박하여 던지도록 했지만 그들은 머리카락 하나도 타지 않았습니다. 왕을 더 놀라게 한 것은 분명 세 명을 던졌지만 불 속에 네 명이 있는 것이었고 그 중 한 사람은 신적인 존재로 보였다는 것입니다. 그들 중에 주님이 오셔서 함께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주님을 위한 결심과 실행을 귀하게 여기십니다. 비록 우리의 결심 때문에 크고 작은 어려움을 겪게 된다 해도 하나님이 함께 하십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곳이라면 불 속에라도 들어가겠다는 결심속에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가 함께 하시리라 믿습니다.
우리는 다니엘이나 다니엘의 세 친구처럼 결심을 통한 드라마틱한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기란 쉽지 않을 것입니다. 시대와 환경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 앞에서 작은 결심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작은 결심들이 모여 큰 결심이 될 것입니다. ‘아침에 QT는 짧더라도 빠지지 않는다. 하루에 가족과 교회를 위해서 꼭 기도한다. 만나는 사람들에게 좋은 인상을 선물한다. 내 가족 친구들이 예수님을 믿도록 날마다 기도한다. 일주일에 한 번 복음을 전하겠다.’ 작은 개울이 모여 강이 되고 강이 모여 바다가 되듯이 작은 결심이 모여 큰 결심이 되고 어느 듯 나도 모르게 믿음의 선배들이 경험한 그 길을 따라 걷고 있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결심은 내 힘으로만 실행할 수 없습니다. 오직 주님의 능력이 필요합니다. 주님의 뜻을 따라 결심하고 주님 의뢰하며 또 결심하고 주님을 의뢰하면서 이 땅에서 목적없이 안주하는 삶을 벗어나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을 경험하며 마지막 때에 주님 오실 날을 부끄럼 없이 준비하는 모든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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