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게 무엇이 있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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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송필오 작성일20-02-16 08:24 조회6,210회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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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하 4:1 선지자의 제자들의 아내 중의 한 여인이 엘리사에게 부르짖어 이르되 당신의 종 나의 남편이 이미 죽었는데 당신의 종이 여호와를 경외한 줄은 당신이 아시는 바니이다 이제 빚 준 사람이 와서 나의 두 아이를 데려가 그의 종을 삼고자 하나이다 하니
4:2 엘리사가 그에게 이르되 내가 너를 위하여 어떻게 하랴 네 집에 무엇이 있는지 내게 말하라 그가 이르되 계집종의 집에 기름 한 그릇 외에는 아무것도 없나이다 하니
4:3 이르되 너는 밖에 나가서 모든 이웃에게 그릇을 빌리라 빈 그릇을 빌리되 조금 빌리지 말고
4:4 너는 네 두 아들과 함께 들어가서 문을 닫고 그 모든 그릇에 기름을 부어서 차는 대로 옮겨 놓으라 하니라
4:5 여인이 물러가서 그의 두 아들과 함께 문을 닫은 후에 그들은 그릇을 그에게로 가져오고 그는 부었더니
4:6 그릇에 다 찬지라 여인이 아들에게 이르되 또 그릇을 내게로 가져오라 하니 아들이 이르되 다른 그릇이 없나이다 하니 기름이 곧 그쳤더라
행복 전도사로 알려진 닉 부이치치를 아마 많이 아실 겁니다. 그는 팔 다리가 짧거나 혹은 없는 해표지증이란 장애를 안고 태어났습니다. 즉 몸의 형태가 마치 해표, 바다표범처럼 생긴 Phocomelia라는 장애지요. 그가 태어났을 때 곁에 있었던 간호사들은 모두 울었고 호주에서 목회를 하고 있었던 아버지는 신음했으며 어머니는 보고 싶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하나님이 우리를 도우실거요.’라고 말하며 어머니를 설득했습니다. 실수로 그가 태어난 것이 절대 아니라고 했지요. 사실 그의 어머니가 그를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들이기까지는 약 4개월이 걸렸습니다. 이후에 그는 어린 시절 커나가면서 왕따나 해코지를 당할 때도 있었고 다음날 눈을 뜨면 팔다리가 돋아 있게 해 달라고 자기 전에 하나님께 기도했지만 아무런 변화가 없자 마침내 분노와 우울감, 그리고 가족들에게 짐만 된다는 좌절감으로 불과 10살 나이에 삶을 포기하려고 한 적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15살 때 인격적으로 하나님을 만났고 19살 때 첫 강연을 시작으로 지금은 전 세계를 다니며 하나님 안에서 찾은 행복을 전하고 있습니다. 몇 년 전 SBS 힐링 캠프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했을 때 나온 사진들을 잠시 소개합니다.
그가 쓴 책 중 ‘삶은 여전히 아름답다’에 보면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난 그저 기괴하게 생긴 애물단지일 뿐이야.’ 어느 날 거울을 들여다보는데 불쑥 이런 생각이 들었다. 족히 5분쯤 자기연민을 주체할 수 없었다. 하지만 곧 내면 깊숙한 곳에서 또 다른 목소리가 들렸다.
‘오케이, 어머니가 늘 이야기하듯 신체의 일부가 없지만 그래도 넌 괜찮은 놈이야. 안 그래? 자 어때, 이제 한 가지라도 마음에 드는 걸 찾아보자고. 단 한 가지만 있어도 충분하잖아?’
그리고 조금 더 자세히 내 모습을 살핀 끝에 마침내 긍정적인 결론에 이르렀다.
‘눈이 멋지군. 여자애들도 내 눈이 예쁘다고 했어. 다른 게 다 이상하다해도 최소한 한 가지는 가졌잖아? 그러니까 평생 아름다운 눈을 가지고 살 수 있는 거지.’
이미 실패한 인생으로 태어난 것처럼 여겨졌던 사람이 별 것 아닌 것 같은 한 가지를 장점으로 받아들이고 이것으로 인생 전체를 다르게 볼 수 있다는 것, 이것은 하나의 기적을 만들어내는 힘입니다. 주님은 결코 실패하지 않으십니다. 어떤 인생도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이상 결코 실패하도록 만들어지지도 않았습니다. 단지 우리가 실패를 선택하기 때문에 실패하는 것입니다. 종종 우리는 우리에게 없는 것만 바라보며 한탄하기 때문에 가진 것을 보지 못하고 실패를 숙명처럼 받아들일 때가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가진 것과 비교하느라 자신이 가진 특별한 점을 하찮게 여기고 쓰레기처럼 버리고 맙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구약시대 선지자 엘리사 시대에 일어났던 기적입니다. 엘리사 당시에는 몇 몇 선지자 학교가 있어서 제자들을 키웠는데 요사이 같으면 신학교 같은 성격의 학교였을 것입니다. 지금도 대체로 그럴 경우가 많지만 선지자 학교 학생들은 넉넉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당시 사회에서는 요즈음처럼 개인의 신용에 따라 돈을 빌려 주었는데 빚에 대한 보증으로 채무자와 그 가족의 노동력을 담보로 했습니다. 그래서 만일 약속 기한까지 돈을 갚지 못하면 돈을 빌린 사람이나 그 자녀들이 빌린 돈에 해당하는 노동력을 제공하기 위해 그 집에 들어가 종살이를 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선지자 학교 학생의 아내가 엘리사 선지자를 찾아와서 부르짖으며 하소연했습니다. 자기 남편이 빚만 남기고 죽었는데 이제 채권자가 와서 빚 대신에 두 아이를 종으로 데려가려고 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 절박한 사정을 들은 엘리사 선지자가 그녀에게 말했습니다. ‘내가 너를 위하여 어떻게 하랴 네 집에 무엇이 있는지 내게 말하라.’ 젊은 과부의 사정을 들은 엘리사는 정말 딱했을 것입니다. 뭔가 해결책을 주어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먼저 네 집에 무엇이 있는지를 물었습니다. 빚을 지게 되어 파산하게 되면 일단 집에 돈 될 만한 것은 무조건 팔아서 조금이라도 갚으며 사정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아마 엘리사는 그녀의 집에 뭔가 남은 것이라도 있으면 대신 팔아주려고 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 과부로부터 돌아온 대답은 이것이었습니다. ‘계집종의 집에 기름 한 그릇 외에는 아무것도 없나이다.’
그녀가 엘리사에게 대답했을 때 어느 부분에 강한 억양이 실렸을까요? ‘기름 한 그릇’이란 말일까요, 아니면 ‘아무것도’란 말일까요? 제가 그 입장에 있어서 말을 했다면 이런 어조로 말했을 것 같습니다. ‘기름 한 그릇 밖에는(기어들어가는 목소리), 아무 것도 없나이다(강조하듯이 크고 분명하게).’ 우리는 자주 내게 있는 것은 과소평가하고 없는 것은 과대평가하기가 쉽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어떤 분이실까요? 우리가 크게 보는 것을 하나님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십니다. 이사야 말씀을 보실까요?
사 40:15 보라 그에게는 열방이 통의 한 방울 물과 같고 저울의 작은 티끌 같으며 섬들은 떠오르는 먼지 같으리니
40:16 레바논은 땔감에도 부족하겠고 그 짐승들은 번제에도 부족할 것이라
40:17 그의 앞에는 모든 열방이 아무것도 아니라 그는 그들을 없는 것 같이, 빈 것 같이 여기시느니라
하나님은 온 우주보다 크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열방을 없는 것처럼 여기시기도 하지만 정반대로 아무 것도 아닌 것을 특별한 도구로 사용하기도 하십니다. 하나님은 많이 가졌다고 자랑하는 사람이나 자신이 뭔가 된 사람처럼 우쭐대는 사람을 사용하시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종종 아무 것도 없는 자처럼 바닥으로 떨어지게 하십니다.
잠시 기드온에 대한 이야기로 건너가 보겠습니다. 이스라엘의 왕이 통치하기 전 사사가 다스리던 때에 이스라엘은 그들의 범죄로 말미암아 미디안의 압제를 받게 되었습니다. 계속되는 심한 고통으로 그들이 부르짖었을 때 하나님은 기도를 들으시고 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기드온을 부르셨습니다. 기드온은 자기를 따르는 백성들과 함께 진을 쳤는데 하나님께서는 먼저 기드온에게 전쟁에 나갈 군인들의 수가 너무 많다고 하셨습니다. 인간적인 방법은 전쟁에 나갈 군인들을 될 수 있는 대로 많이 끌어 모으는 법인데 하나님께서는 거꾸로 하셨습니다. 애초에 전쟁에 자원한 사람은 3만 2천명이었지만 하나님께서 두려워 떠는 자는 다 돌려보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2만 2천명이 돌아가고 3분의 1이 채 안 되는 만 명만 남았습니다. 하나님은 그것도 많다고 하시면서 물가로 모두 데려가서 한 가지 테스트를 통해 선별하게 하셨습니다. 물을 마실 때 무릎을 꿇은 채 물을 마시는 사람들을 모두 다 탈락시켜 집으로 돌려보낸 겁니다. 그러고 나니 300명만 달랑 남았습니다. 적들은 마치 메뚜기 떼처럼 평지를 뒤덮고 있었고 낙타만 해도 바닷가의 모래처럼 셀 수 없이 많았는데 고작 이 300명으로 그 많은 적들을 상대한다고요? 하나님께서는 왜 이렇게 하셨는지를 직접 설명하셨습니다.
삿 7:2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너를 따르는 백성이 너무 많은즉 내가 그들의 손에 미디안 사람을 넘겨주지 아니하리니 이는 이스라엘이 나를 거슬러 스스로 자랑하기를 내 손이 나를 구원하였다 할까 함이니라
우리는 참 어쩔 수 없는 존재인가 봅니다. 조금이라도 내 공로가 들어갔다고 생각하면 전부 내가 잘해서 그런 줄 착각하여 목에 힘이 들어가고 자기를 자랑하기 바쁩니다. 기드온은 비록 하나님께서 하라고 하신 대로 순종하긴 했지만 고작 남은 300명을 데리고 과연 저 수많은 적들을 어떻게 무찌를 수 있을 것인가 고민하고 두려워했습니다. 그 마음을 아신 하나님께서는 기드온에게 밤에 부하를 데리고 적진으로 몰래 잠입해서 적병끼리 하는 이야기를 들어보라고 하셨지요. 이에 기드온이 몰래 부하 부라를 데리고 진영 가까이 갔을 때 한 적군이 자기 동료와 나누는 이야기를 엿듣게 됩니다. 이런 대화였지요.
‘여보게, 내가 꿈을 꾸었는데 보리빵 한 덩어리가 미디안 진으로 굴러 들어오더니 장막까지 와서 장막을 쳐서 뒤엎어버리는 바람에 그만 장막이 쓰러지고 말았다네.’
그러자 듣던 병사가 이렇게 꿈을 풀이했습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이스라엘 사람 요아스의 아들인 기드온의 칼이 틀림없네. 하나님이 미디안과 그 모든 진을 그의 손에 넘기신다는 뜻일세.’
이 이야기를 들은 기드온은 용기와 담대함으로 충만해졌습니다. 그리고 자기 진영으로 돌아와 300명을 이끌고 전쟁에 나가 대승을 거두게 되지요. 하필 왜 보리떡 하나가 미디안 진으로 굴러들어갔을까요? 그 보리떡이 무엇을 의미할까요? 당시 보리떡은 가난한 사람들이 흔하게 먹었던 음식으로 ‘비천함’을 상징합니다. 그 보리떡은 넓은 의미로서는 미디안의 압제로 인해 가난에 찌들었던 비천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의미하고 좁은 의미로서는 비천한 가문 출신인 기드온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법은 사람들이 일하는 방식과 다릅니다. 비천한 자를 부르십니다. 그리고 비천한 자를 사용하십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하는 자를 사용하십니다. 보리떡 같이 평범하고 비천하기 짝이 없는 나를 통해서 일하십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고전 1:26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1:27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1:28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1:29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사람들은 끊임없이 상향성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하향성이십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하늘보좌에서 이 땅에 인간의 모습으로 내려오신 것은 하향성의 극치입니다. 이 세상은 높이 올라갈수록 그리고 많이 가지면 가질수록 그것이 능력을 증명하는 길이고 인정받는 길이며 성공하는 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끝까지 내려간 사람들을 많이 사용하십니다. 가진 것이 거의 남지 않은 사람들을 특별히 사용하십니다. 왜냐하면 자신에게 자랑할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알고 하나님이 하신 일만 자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처음 본문으로 돌아갑니다. 채권자에게 두 아이를 종으로 팔릴 위기에 처한 제자의 아내가 엘리사에게 대답한 말을 다시 보겠습니다. ‘계집종의 집에 기름 한 그릇 외에는 아무것도 없나이다.’ 우리는 없는 것에 주목하지만 하나님은 있는 것에 더 주목하신다는 사실을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그녀의 집에 아무것도 없는 것 같지만 아직 남아 있는 것이 있었습니다. 바로 기름 한 그릇입니다. 우리는 없는 것을 자꾸 들먹이지만 하나님은 있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으십니다. 40세가 될 때까지 애굽의 모든 지혜를 섭렵하고 이제 자신이 이스라엘을 구원할 자격이 갖추었다고 자신했던 모세는 하루아침에 도망자가 되어 양치기로 40년 세월을 보냈습니다. 드디어 40년이 지나 80세가 되었을 때 광야에서 양 떼를 치던 그에게 하나님이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에게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할 것이다.’
모세는 ‘제가 누구기에 그런 일을 할 수 있겠으며 설사 제가 나선다 해도 동족들이 저를 믿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이 때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물으셨지요.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 '지팡이입니다.' 그 지팡이는 양 떼들을 인도하고 맹수로부터 지키기 위해 사용하던 손 때 묻은 나무막대기에 불과했습니다. 하나님은 그 지팡이를 던지라고 하셨습니다. 던지니까 뱀이 되었고 다시 뱀 꼬리를 잡으라고 하셔서 잡으니 다시 지팡이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무것도 아닌 그 지팡이를 능력의 도구로 사용하기 시작하셨습니다. 모세가 그 지팡이로 나일강을 치니 물이 피로 변해버렸습니다. 그 지팡이를 잡고 강들과 운하들과 못에 펴니 개구리들이 사방에서 올라와 애굽 땅이 개구리 떼들로 덮여버렸습니다. 지팡이를 잡고 땅의 티끌을 치니 땅의 티끌이 다 이가 되어 사람과 가축에게 마구 올랐습니다. 지팡이를 드니 우박과 불덩이가 하늘에서 쏟아졌습니다. 지팡이를 드니 엄청난 메뚜기 떼가 바람에 날려 날아왔습니다. 지팡이로 바위를 치니 물 없는 메마른 광야에서 물이 솟아났습니다. 아말렉과 치열한 전투를 벌이는 전쟁터가 보이던 산꼭대기에 올라 80이 넘은 노인이 지팡이를 하늘을 향해 높이 드니 이스라엘 군대가 아말렉을 압도했습니다. 양 치던 도구인 한 낱 나무 작대기에 불과한 지팡이를 하나님께 드렸을 때 하나님이 쓰시는 능력의 도구가 된 것입니다.
내 손에 있는 것이 얼마나 가치 있는 것인가, 내 손에 가지고 있는 것이 얼마나 많은가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그것을 주님의 손에 드렸는가? 아니면 내 손으로 계속 움켜잡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모세가 하나님께 ‘저는 말을 못하기 때문에 그 일을 감당하기에 적합하지 않습니다.’라고 변명했을 때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누가 입을 지었느냐? 내가 너의 입과 함께 하겠다’ 그래도 못 미더웠던 모세가 ‘보낼 만한 사람을 보내소서.’라고 했을 때 하나님은 그를 향해 노하시고 ‘그렇다면 네 형 아론이 있지 않느냐?’라고 일침을 놓으셨습니다. 우리는 ‘없다, 못한다.’라고 자주 말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내가 너와 같이 있지 않느냐? 또 너에게 준 것이 있지 않느냐.’라고 하십니다. 가지고 있는 것이 비록 별 쓸모없는 나무 지팡이라 해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더 이상 모세의 지팡이가 아니라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하기 위해 쓰임 받는 하나님의 지팡이가 되는 것입니다.
삼손은 나귀 턱뼈로 블레셋 군대 천명을 물리쳤습니다. 역시 사사였던 삼갈이란 용사는 소를 모는 막대기로 블레셋 600명을 치고 이스라엘을 구원했습니다. 다윗은 조약돌로 거대한 골리앗을 쓰러뜨렸습니다. 하나님이 사용하시면 가지고 있는 것이 나귀 턱뼈든, 소 모는 막대기든, 작은 조약돌이든 아무 관계없습니다. 최근에 약 3,000여명이 출전한 볼링 대회가 있었는데 그 대회에서 두 손이 없는 청년이 5등을 해서 화제가 되었답니다. 두 손이 없이 볼링을 친다? 상상하실 수 있나요? 그 때 소감을 이야기하는 자리에서 그는 이렇게 이야기했다고 합니다. ‘저는 두 손이 없지만 두 팔과 두 팔꿈치가 있습니다.’ 희망과 행복을 전하는 전도사 닉 부이치치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사지가 없어도 말하는 입은 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을 올라가다가 뭔가 돈을 줄까 빤히 쳐다보던 앉은뱅이 걸인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이 시간 저와 여러분에게 있는 것을 한 번 떠올려 보십시오. 두 팔과 두 다리가 있습니까? 그럼 적어도 닉 부이치치보다 더 많이 가진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생각보다 많이 가진 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비록 아무것도 없다 해도 예수님의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예수님의 이름으로 우리는 어떤 것이라도 구하며 기도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악한 세력들과 죄를 대적하고 물리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은 어떤 좌절이나 절망의 감옥이라도 그 문을 부수고 열 수 있는 열쇠입니다.
엘리사는 과부가 된 제자의 아내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는 밖에 나가서 모든 이웃에게 그릇을 빌리라 빈 그릇을 빌리되 조금 빌리지 말고 네 두 아들과 함께 들어가서 문을 닫고 그 모든 그릇에 기름을 부어서 차는 대로 옮겨 놓으라.’ 그 말에 순종하여 그들은 이웃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그릇이란 그릇은 모두 빌릴 수 있는 대로 다 빌렸습니다. 그리고 문을 닫고 아들에게 그릇을 하나씩 가져오게 해서 기름을 붓기 시작했는데 부어도 부어도 계속 기름이 흘러나왔습니다. 마침내 마지막 남은 그릇에 기름을 가득 채우고 그 여인이 아들에게 물었습니다. ‘그릇이 더 없느냐?’ 아들이 없다고 말하자마자 기름이 신기하게 딱 그치고 말았습니다.
은혜의 기름은 우리가 받을 준비를 하는 만큼 채워질 것입니다. 그 은혜는 ‘나는 더 이상 안 돼, 나는 없어’하는 순간 그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크기를 자신의 생각으로 제한하지 마십시오. 시편 81편 10절에서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시 81:10 나는 너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 네 하나님이니 네 입을 크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 하였으나
하나님께 크게 기대하십시오. 저와 여러분에게 하나님은 얼마나 크신 분이십니까? 렘 33장 3절에서 하나님은 또 말씀하십니다.
렘 33:3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우리가 얼마나 가졌느냐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내 손에 있으면 그저 그런 뿐일 따름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손에 드리면 그것에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게 됩니다. 떡 다섯과 물고기 두 마리가 어린 소년의 손에 들려 있었을 때는 그저 그것밖에 되지 않았지만 그것이 주님의 손에 옮겨졌을 때 오 천명 이상을 먹이는 떡과 물고기가 되었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얼마나 많이 가졌느냐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내 손에 있는가, 아니면 주님 손에 있는가가 중요합니다. 내 마음대로 쓰는가, 아니면 주님 원하시는 대로 쓰시도록 드렸는가가 중요합니다.
무엇보다 그릇을 준비하십시오.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그릇입니다. 저와 여러분의 마음의 그릇을 준비하십시오. 기도하실 때 큰 은혜를 구하십시오. 하나님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크신 하나님이심을 기억하십시오. 만일 아직도 내게 없는 것을 자꾸 이야기한다면 아직도 내 자신이 크신 하나님이 아니라 여전히 덧없는 자신을 의지하고 있는 증거입니다. 우리는 있으면 있을수록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기가 십상이지만 자신에게 없으면 없을수록 더욱 하나님을 의지하게 됩니다. 내게 무엇이 있는지 한 번 시간을 내어 기록해 보십시오. 생각보다 훨씬 많은 것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하나하나 내 손에서 주님의 손으로 옮기는 기도를 해 보십시오. 이 시간 저의 몸을 주님께 드립니다. 저의 시간을 드리겠습니다. 제가 가진 재물을 주께서 쓰시겠다고 하시면 주님의 손에 드리겠습니다. 저의 재능을 주님께 드립니다. 주님께서 달라하시면 기꺼이 드리겠습니다. 이렇게 하라 하시면 이렇게 하고 저렇게 하라고 하시면 저렇게 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이야기 한 가지를 하고 마치겠습니다.
시골에서 올라와 남의 집에 가정부 일을 하면서 교회에 나오던 한 처녀가 있었습니다. 그녀는 늘 이렇게 하나님 앞에 기도했습니다. ‘저는 배운 것이 없어서 성가대도 못합니다. 주일학교 선생도 할 수가 없습니다. 또 남의 집에서 일하기 때문에 자유스러운 몸으로 봉사할 수도 없습니다.’
이 처녀가 자신의 답답한 현실에 대해 눈물을 흘리면서 하나님께 하소연하듯이 기도하는데 갑자기 하나님의 음성이 내면에 들리더랍니다.
‘딸아! 너에게 자유로운 시간을 생각해 봐라.’
‘저는 밤 10시 이후에나 시간이 있습니다.’
‘그러면 좋다. 그 시간에 네 손으로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냐?’
그 처녀는 퍼뜩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옳구나! 그 시간에 내가 교회 청소하는 일을 해야겠구나.’
그날 이후 이 처녀는 밤 10시에 나와서 눈물로 걸레를 적시며 강단과 의자와 그리고 유리창을 닦고 교회 구석구석을 닦았습니다. 마침내 그녀의 감동적인 헌신은 교인들의 심금을 울렸고 그 교회 성도들의 주선으로 회사에 취직되었으며 야간 학교를 거쳐 대학까지 갔습니다. 지금은 유능한 여성 사업가가 되어 하나님의 일을 섬기는 일군이 되었답니다.
하나님은 네게 무엇이 있느냐 물으십니다. 오늘 이 시간부터 내게 없는 것을 탓하지 맙시다. 하나님은 내게 없는 것이 아니라 내게 있는 것을 가지고 사용하십니다. 그것이 얼마나 많든 얼마나 적든 하나님은 아무 영향을 받지 않으십니다. 젊은 과부에게 마지막 남은 기름 한 병으로 하나님은 일하셨습니다. 비슷한 처지에 있다면 이렇게 기도해 보십시다. ‘주님 제게 남은 것은 비록 이것뿐이지만 주님의 손에 맡기겠습니다. 사용하여 주십시오.’
그리고 그릇을 준비하십시다. 할 수 있는 대로 크고 많은 그릇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큰 것을 구하는 것은 결코 욕심이 아닙니다. 저와 여러분에게 하나님은 얼마나 크십니까? 얼마나 능력이 있으십니까?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과 상관없이 크고 위대하신 분이지만 우리 마음에서 한없이 작아지곤 하십니다. 우리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이 마치 어린아이가 잠시 가지고 놀다가 버릴 장난감 같은 것이 아닙니까? 입을 크게 엽시다. 크시고 위대하신 하나님께 크고 위대한 것을 구합시다. 이 한 주간동안 우리가 가진 크고 작은 것들을 모두 주님의 손에 옮겨드림으로 내가 상상하지 못했던 크고 풍성한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경험하는 한 주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4:2 엘리사가 그에게 이르되 내가 너를 위하여 어떻게 하랴 네 집에 무엇이 있는지 내게 말하라 그가 이르되 계집종의 집에 기름 한 그릇 외에는 아무것도 없나이다 하니
4:3 이르되 너는 밖에 나가서 모든 이웃에게 그릇을 빌리라 빈 그릇을 빌리되 조금 빌리지 말고
4:4 너는 네 두 아들과 함께 들어가서 문을 닫고 그 모든 그릇에 기름을 부어서 차는 대로 옮겨 놓으라 하니라
4:5 여인이 물러가서 그의 두 아들과 함께 문을 닫은 후에 그들은 그릇을 그에게로 가져오고 그는 부었더니
4:6 그릇에 다 찬지라 여인이 아들에게 이르되 또 그릇을 내게로 가져오라 하니 아들이 이르되 다른 그릇이 없나이다 하니 기름이 곧 그쳤더라
행복 전도사로 알려진 닉 부이치치를 아마 많이 아실 겁니다. 그는 팔 다리가 짧거나 혹은 없는 해표지증이란 장애를 안고 태어났습니다. 즉 몸의 형태가 마치 해표, 바다표범처럼 생긴 Phocomelia라는 장애지요. 그가 태어났을 때 곁에 있었던 간호사들은 모두 울었고 호주에서 목회를 하고 있었던 아버지는 신음했으며 어머니는 보고 싶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하나님이 우리를 도우실거요.’라고 말하며 어머니를 설득했습니다. 실수로 그가 태어난 것이 절대 아니라고 했지요. 사실 그의 어머니가 그를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들이기까지는 약 4개월이 걸렸습니다. 이후에 그는 어린 시절 커나가면서 왕따나 해코지를 당할 때도 있었고 다음날 눈을 뜨면 팔다리가 돋아 있게 해 달라고 자기 전에 하나님께 기도했지만 아무런 변화가 없자 마침내 분노와 우울감, 그리고 가족들에게 짐만 된다는 좌절감으로 불과 10살 나이에 삶을 포기하려고 한 적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15살 때 인격적으로 하나님을 만났고 19살 때 첫 강연을 시작으로 지금은 전 세계를 다니며 하나님 안에서 찾은 행복을 전하고 있습니다. 몇 년 전 SBS 힐링 캠프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했을 때 나온 사진들을 잠시 소개합니다.
그가 쓴 책 중 ‘삶은 여전히 아름답다’에 보면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난 그저 기괴하게 생긴 애물단지일 뿐이야.’ 어느 날 거울을 들여다보는데 불쑥 이런 생각이 들었다. 족히 5분쯤 자기연민을 주체할 수 없었다. 하지만 곧 내면 깊숙한 곳에서 또 다른 목소리가 들렸다.
‘오케이, 어머니가 늘 이야기하듯 신체의 일부가 없지만 그래도 넌 괜찮은 놈이야. 안 그래? 자 어때, 이제 한 가지라도 마음에 드는 걸 찾아보자고. 단 한 가지만 있어도 충분하잖아?’
그리고 조금 더 자세히 내 모습을 살핀 끝에 마침내 긍정적인 결론에 이르렀다.
‘눈이 멋지군. 여자애들도 내 눈이 예쁘다고 했어. 다른 게 다 이상하다해도 최소한 한 가지는 가졌잖아? 그러니까 평생 아름다운 눈을 가지고 살 수 있는 거지.’
이미 실패한 인생으로 태어난 것처럼 여겨졌던 사람이 별 것 아닌 것 같은 한 가지를 장점으로 받아들이고 이것으로 인생 전체를 다르게 볼 수 있다는 것, 이것은 하나의 기적을 만들어내는 힘입니다. 주님은 결코 실패하지 않으십니다. 어떤 인생도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이상 결코 실패하도록 만들어지지도 않았습니다. 단지 우리가 실패를 선택하기 때문에 실패하는 것입니다. 종종 우리는 우리에게 없는 것만 바라보며 한탄하기 때문에 가진 것을 보지 못하고 실패를 숙명처럼 받아들일 때가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가진 것과 비교하느라 자신이 가진 특별한 점을 하찮게 여기고 쓰레기처럼 버리고 맙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구약시대 선지자 엘리사 시대에 일어났던 기적입니다. 엘리사 당시에는 몇 몇 선지자 학교가 있어서 제자들을 키웠는데 요사이 같으면 신학교 같은 성격의 학교였을 것입니다. 지금도 대체로 그럴 경우가 많지만 선지자 학교 학생들은 넉넉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당시 사회에서는 요즈음처럼 개인의 신용에 따라 돈을 빌려 주었는데 빚에 대한 보증으로 채무자와 그 가족의 노동력을 담보로 했습니다. 그래서 만일 약속 기한까지 돈을 갚지 못하면 돈을 빌린 사람이나 그 자녀들이 빌린 돈에 해당하는 노동력을 제공하기 위해 그 집에 들어가 종살이를 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선지자 학교 학생의 아내가 엘리사 선지자를 찾아와서 부르짖으며 하소연했습니다. 자기 남편이 빚만 남기고 죽었는데 이제 채권자가 와서 빚 대신에 두 아이를 종으로 데려가려고 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 절박한 사정을 들은 엘리사 선지자가 그녀에게 말했습니다. ‘내가 너를 위하여 어떻게 하랴 네 집에 무엇이 있는지 내게 말하라.’ 젊은 과부의 사정을 들은 엘리사는 정말 딱했을 것입니다. 뭔가 해결책을 주어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먼저 네 집에 무엇이 있는지를 물었습니다. 빚을 지게 되어 파산하게 되면 일단 집에 돈 될 만한 것은 무조건 팔아서 조금이라도 갚으며 사정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아마 엘리사는 그녀의 집에 뭔가 남은 것이라도 있으면 대신 팔아주려고 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 과부로부터 돌아온 대답은 이것이었습니다. ‘계집종의 집에 기름 한 그릇 외에는 아무것도 없나이다.’
그녀가 엘리사에게 대답했을 때 어느 부분에 강한 억양이 실렸을까요? ‘기름 한 그릇’이란 말일까요, 아니면 ‘아무것도’란 말일까요? 제가 그 입장에 있어서 말을 했다면 이런 어조로 말했을 것 같습니다. ‘기름 한 그릇 밖에는(기어들어가는 목소리), 아무 것도 없나이다(강조하듯이 크고 분명하게).’ 우리는 자주 내게 있는 것은 과소평가하고 없는 것은 과대평가하기가 쉽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어떤 분이실까요? 우리가 크게 보는 것을 하나님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십니다. 이사야 말씀을 보실까요?
사 40:15 보라 그에게는 열방이 통의 한 방울 물과 같고 저울의 작은 티끌 같으며 섬들은 떠오르는 먼지 같으리니
40:16 레바논은 땔감에도 부족하겠고 그 짐승들은 번제에도 부족할 것이라
40:17 그의 앞에는 모든 열방이 아무것도 아니라 그는 그들을 없는 것 같이, 빈 것 같이 여기시느니라
하나님은 온 우주보다 크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열방을 없는 것처럼 여기시기도 하지만 정반대로 아무 것도 아닌 것을 특별한 도구로 사용하기도 하십니다. 하나님은 많이 가졌다고 자랑하는 사람이나 자신이 뭔가 된 사람처럼 우쭐대는 사람을 사용하시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종종 아무 것도 없는 자처럼 바닥으로 떨어지게 하십니다.
잠시 기드온에 대한 이야기로 건너가 보겠습니다. 이스라엘의 왕이 통치하기 전 사사가 다스리던 때에 이스라엘은 그들의 범죄로 말미암아 미디안의 압제를 받게 되었습니다. 계속되는 심한 고통으로 그들이 부르짖었을 때 하나님은 기도를 들으시고 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기드온을 부르셨습니다. 기드온은 자기를 따르는 백성들과 함께 진을 쳤는데 하나님께서는 먼저 기드온에게 전쟁에 나갈 군인들의 수가 너무 많다고 하셨습니다. 인간적인 방법은 전쟁에 나갈 군인들을 될 수 있는 대로 많이 끌어 모으는 법인데 하나님께서는 거꾸로 하셨습니다. 애초에 전쟁에 자원한 사람은 3만 2천명이었지만 하나님께서 두려워 떠는 자는 다 돌려보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2만 2천명이 돌아가고 3분의 1이 채 안 되는 만 명만 남았습니다. 하나님은 그것도 많다고 하시면서 물가로 모두 데려가서 한 가지 테스트를 통해 선별하게 하셨습니다. 물을 마실 때 무릎을 꿇은 채 물을 마시는 사람들을 모두 다 탈락시켜 집으로 돌려보낸 겁니다. 그러고 나니 300명만 달랑 남았습니다. 적들은 마치 메뚜기 떼처럼 평지를 뒤덮고 있었고 낙타만 해도 바닷가의 모래처럼 셀 수 없이 많았는데 고작 이 300명으로 그 많은 적들을 상대한다고요? 하나님께서는 왜 이렇게 하셨는지를 직접 설명하셨습니다.
삿 7:2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너를 따르는 백성이 너무 많은즉 내가 그들의 손에 미디안 사람을 넘겨주지 아니하리니 이는 이스라엘이 나를 거슬러 스스로 자랑하기를 내 손이 나를 구원하였다 할까 함이니라
우리는 참 어쩔 수 없는 존재인가 봅니다. 조금이라도 내 공로가 들어갔다고 생각하면 전부 내가 잘해서 그런 줄 착각하여 목에 힘이 들어가고 자기를 자랑하기 바쁩니다. 기드온은 비록 하나님께서 하라고 하신 대로 순종하긴 했지만 고작 남은 300명을 데리고 과연 저 수많은 적들을 어떻게 무찌를 수 있을 것인가 고민하고 두려워했습니다. 그 마음을 아신 하나님께서는 기드온에게 밤에 부하를 데리고 적진으로 몰래 잠입해서 적병끼리 하는 이야기를 들어보라고 하셨지요. 이에 기드온이 몰래 부하 부라를 데리고 진영 가까이 갔을 때 한 적군이 자기 동료와 나누는 이야기를 엿듣게 됩니다. 이런 대화였지요.
‘여보게, 내가 꿈을 꾸었는데 보리빵 한 덩어리가 미디안 진으로 굴러 들어오더니 장막까지 와서 장막을 쳐서 뒤엎어버리는 바람에 그만 장막이 쓰러지고 말았다네.’
그러자 듣던 병사가 이렇게 꿈을 풀이했습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이스라엘 사람 요아스의 아들인 기드온의 칼이 틀림없네. 하나님이 미디안과 그 모든 진을 그의 손에 넘기신다는 뜻일세.’
이 이야기를 들은 기드온은 용기와 담대함으로 충만해졌습니다. 그리고 자기 진영으로 돌아와 300명을 이끌고 전쟁에 나가 대승을 거두게 되지요. 하필 왜 보리떡 하나가 미디안 진으로 굴러들어갔을까요? 그 보리떡이 무엇을 의미할까요? 당시 보리떡은 가난한 사람들이 흔하게 먹었던 음식으로 ‘비천함’을 상징합니다. 그 보리떡은 넓은 의미로서는 미디안의 압제로 인해 가난에 찌들었던 비천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의미하고 좁은 의미로서는 비천한 가문 출신인 기드온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법은 사람들이 일하는 방식과 다릅니다. 비천한 자를 부르십니다. 그리고 비천한 자를 사용하십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하는 자를 사용하십니다. 보리떡 같이 평범하고 비천하기 짝이 없는 나를 통해서 일하십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고전 1:26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1:27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1:28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1:29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사람들은 끊임없이 상향성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하향성이십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하늘보좌에서 이 땅에 인간의 모습으로 내려오신 것은 하향성의 극치입니다. 이 세상은 높이 올라갈수록 그리고 많이 가지면 가질수록 그것이 능력을 증명하는 길이고 인정받는 길이며 성공하는 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끝까지 내려간 사람들을 많이 사용하십니다. 가진 것이 거의 남지 않은 사람들을 특별히 사용하십니다. 왜냐하면 자신에게 자랑할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알고 하나님이 하신 일만 자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처음 본문으로 돌아갑니다. 채권자에게 두 아이를 종으로 팔릴 위기에 처한 제자의 아내가 엘리사에게 대답한 말을 다시 보겠습니다. ‘계집종의 집에 기름 한 그릇 외에는 아무것도 없나이다.’ 우리는 없는 것에 주목하지만 하나님은 있는 것에 더 주목하신다는 사실을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그녀의 집에 아무것도 없는 것 같지만 아직 남아 있는 것이 있었습니다. 바로 기름 한 그릇입니다. 우리는 없는 것을 자꾸 들먹이지만 하나님은 있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으십니다. 40세가 될 때까지 애굽의 모든 지혜를 섭렵하고 이제 자신이 이스라엘을 구원할 자격이 갖추었다고 자신했던 모세는 하루아침에 도망자가 되어 양치기로 40년 세월을 보냈습니다. 드디어 40년이 지나 80세가 되었을 때 광야에서 양 떼를 치던 그에게 하나님이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에게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할 것이다.’
모세는 ‘제가 누구기에 그런 일을 할 수 있겠으며 설사 제가 나선다 해도 동족들이 저를 믿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이 때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물으셨지요.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 '지팡이입니다.' 그 지팡이는 양 떼들을 인도하고 맹수로부터 지키기 위해 사용하던 손 때 묻은 나무막대기에 불과했습니다. 하나님은 그 지팡이를 던지라고 하셨습니다. 던지니까 뱀이 되었고 다시 뱀 꼬리를 잡으라고 하셔서 잡으니 다시 지팡이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무것도 아닌 그 지팡이를 능력의 도구로 사용하기 시작하셨습니다. 모세가 그 지팡이로 나일강을 치니 물이 피로 변해버렸습니다. 그 지팡이를 잡고 강들과 운하들과 못에 펴니 개구리들이 사방에서 올라와 애굽 땅이 개구리 떼들로 덮여버렸습니다. 지팡이를 잡고 땅의 티끌을 치니 땅의 티끌이 다 이가 되어 사람과 가축에게 마구 올랐습니다. 지팡이를 드니 우박과 불덩이가 하늘에서 쏟아졌습니다. 지팡이를 드니 엄청난 메뚜기 떼가 바람에 날려 날아왔습니다. 지팡이로 바위를 치니 물 없는 메마른 광야에서 물이 솟아났습니다. 아말렉과 치열한 전투를 벌이는 전쟁터가 보이던 산꼭대기에 올라 80이 넘은 노인이 지팡이를 하늘을 향해 높이 드니 이스라엘 군대가 아말렉을 압도했습니다. 양 치던 도구인 한 낱 나무 작대기에 불과한 지팡이를 하나님께 드렸을 때 하나님이 쓰시는 능력의 도구가 된 것입니다.
내 손에 있는 것이 얼마나 가치 있는 것인가, 내 손에 가지고 있는 것이 얼마나 많은가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그것을 주님의 손에 드렸는가? 아니면 내 손으로 계속 움켜잡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모세가 하나님께 ‘저는 말을 못하기 때문에 그 일을 감당하기에 적합하지 않습니다.’라고 변명했을 때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누가 입을 지었느냐? 내가 너의 입과 함께 하겠다’ 그래도 못 미더웠던 모세가 ‘보낼 만한 사람을 보내소서.’라고 했을 때 하나님은 그를 향해 노하시고 ‘그렇다면 네 형 아론이 있지 않느냐?’라고 일침을 놓으셨습니다. 우리는 ‘없다, 못한다.’라고 자주 말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내가 너와 같이 있지 않느냐? 또 너에게 준 것이 있지 않느냐.’라고 하십니다. 가지고 있는 것이 비록 별 쓸모없는 나무 지팡이라 해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더 이상 모세의 지팡이가 아니라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하기 위해 쓰임 받는 하나님의 지팡이가 되는 것입니다.
삼손은 나귀 턱뼈로 블레셋 군대 천명을 물리쳤습니다. 역시 사사였던 삼갈이란 용사는 소를 모는 막대기로 블레셋 600명을 치고 이스라엘을 구원했습니다. 다윗은 조약돌로 거대한 골리앗을 쓰러뜨렸습니다. 하나님이 사용하시면 가지고 있는 것이 나귀 턱뼈든, 소 모는 막대기든, 작은 조약돌이든 아무 관계없습니다. 최근에 약 3,000여명이 출전한 볼링 대회가 있었는데 그 대회에서 두 손이 없는 청년이 5등을 해서 화제가 되었답니다. 두 손이 없이 볼링을 친다? 상상하실 수 있나요? 그 때 소감을 이야기하는 자리에서 그는 이렇게 이야기했다고 합니다. ‘저는 두 손이 없지만 두 팔과 두 팔꿈치가 있습니다.’ 희망과 행복을 전하는 전도사 닉 부이치치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사지가 없어도 말하는 입은 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을 올라가다가 뭔가 돈을 줄까 빤히 쳐다보던 앉은뱅이 걸인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이 시간 저와 여러분에게 있는 것을 한 번 떠올려 보십시오. 두 팔과 두 다리가 있습니까? 그럼 적어도 닉 부이치치보다 더 많이 가진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생각보다 많이 가진 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비록 아무것도 없다 해도 예수님의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예수님의 이름으로 우리는 어떤 것이라도 구하며 기도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악한 세력들과 죄를 대적하고 물리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은 어떤 좌절이나 절망의 감옥이라도 그 문을 부수고 열 수 있는 열쇠입니다.
엘리사는 과부가 된 제자의 아내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는 밖에 나가서 모든 이웃에게 그릇을 빌리라 빈 그릇을 빌리되 조금 빌리지 말고 네 두 아들과 함께 들어가서 문을 닫고 그 모든 그릇에 기름을 부어서 차는 대로 옮겨 놓으라.’ 그 말에 순종하여 그들은 이웃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그릇이란 그릇은 모두 빌릴 수 있는 대로 다 빌렸습니다. 그리고 문을 닫고 아들에게 그릇을 하나씩 가져오게 해서 기름을 붓기 시작했는데 부어도 부어도 계속 기름이 흘러나왔습니다. 마침내 마지막 남은 그릇에 기름을 가득 채우고 그 여인이 아들에게 물었습니다. ‘그릇이 더 없느냐?’ 아들이 없다고 말하자마자 기름이 신기하게 딱 그치고 말았습니다.
은혜의 기름은 우리가 받을 준비를 하는 만큼 채워질 것입니다. 그 은혜는 ‘나는 더 이상 안 돼, 나는 없어’하는 순간 그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크기를 자신의 생각으로 제한하지 마십시오. 시편 81편 10절에서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시 81:10 나는 너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 네 하나님이니 네 입을 크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 하였으나
하나님께 크게 기대하십시오. 저와 여러분에게 하나님은 얼마나 크신 분이십니까? 렘 33장 3절에서 하나님은 또 말씀하십니다.
렘 33:3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우리가 얼마나 가졌느냐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내 손에 있으면 그저 그런 뿐일 따름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손에 드리면 그것에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게 됩니다. 떡 다섯과 물고기 두 마리가 어린 소년의 손에 들려 있었을 때는 그저 그것밖에 되지 않았지만 그것이 주님의 손에 옮겨졌을 때 오 천명 이상을 먹이는 떡과 물고기가 되었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얼마나 많이 가졌느냐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내 손에 있는가, 아니면 주님 손에 있는가가 중요합니다. 내 마음대로 쓰는가, 아니면 주님 원하시는 대로 쓰시도록 드렸는가가 중요합니다.
무엇보다 그릇을 준비하십시오.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그릇입니다. 저와 여러분의 마음의 그릇을 준비하십시오. 기도하실 때 큰 은혜를 구하십시오. 하나님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크신 하나님이심을 기억하십시오. 만일 아직도 내게 없는 것을 자꾸 이야기한다면 아직도 내 자신이 크신 하나님이 아니라 여전히 덧없는 자신을 의지하고 있는 증거입니다. 우리는 있으면 있을수록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기가 십상이지만 자신에게 없으면 없을수록 더욱 하나님을 의지하게 됩니다. 내게 무엇이 있는지 한 번 시간을 내어 기록해 보십시오. 생각보다 훨씬 많은 것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하나하나 내 손에서 주님의 손으로 옮기는 기도를 해 보십시오. 이 시간 저의 몸을 주님께 드립니다. 저의 시간을 드리겠습니다. 제가 가진 재물을 주께서 쓰시겠다고 하시면 주님의 손에 드리겠습니다. 저의 재능을 주님께 드립니다. 주님께서 달라하시면 기꺼이 드리겠습니다. 이렇게 하라 하시면 이렇게 하고 저렇게 하라고 하시면 저렇게 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이야기 한 가지를 하고 마치겠습니다.
시골에서 올라와 남의 집에 가정부 일을 하면서 교회에 나오던 한 처녀가 있었습니다. 그녀는 늘 이렇게 하나님 앞에 기도했습니다. ‘저는 배운 것이 없어서 성가대도 못합니다. 주일학교 선생도 할 수가 없습니다. 또 남의 집에서 일하기 때문에 자유스러운 몸으로 봉사할 수도 없습니다.’
이 처녀가 자신의 답답한 현실에 대해 눈물을 흘리면서 하나님께 하소연하듯이 기도하는데 갑자기 하나님의 음성이 내면에 들리더랍니다.
‘딸아! 너에게 자유로운 시간을 생각해 봐라.’
‘저는 밤 10시 이후에나 시간이 있습니다.’
‘그러면 좋다. 그 시간에 네 손으로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냐?’
그 처녀는 퍼뜩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옳구나! 그 시간에 내가 교회 청소하는 일을 해야겠구나.’
그날 이후 이 처녀는 밤 10시에 나와서 눈물로 걸레를 적시며 강단과 의자와 그리고 유리창을 닦고 교회 구석구석을 닦았습니다. 마침내 그녀의 감동적인 헌신은 교인들의 심금을 울렸고 그 교회 성도들의 주선으로 회사에 취직되었으며 야간 학교를 거쳐 대학까지 갔습니다. 지금은 유능한 여성 사업가가 되어 하나님의 일을 섬기는 일군이 되었답니다.
하나님은 네게 무엇이 있느냐 물으십니다. 오늘 이 시간부터 내게 없는 것을 탓하지 맙시다. 하나님은 내게 없는 것이 아니라 내게 있는 것을 가지고 사용하십니다. 그것이 얼마나 많든 얼마나 적든 하나님은 아무 영향을 받지 않으십니다. 젊은 과부에게 마지막 남은 기름 한 병으로 하나님은 일하셨습니다. 비슷한 처지에 있다면 이렇게 기도해 보십시다. ‘주님 제게 남은 것은 비록 이것뿐이지만 주님의 손에 맡기겠습니다. 사용하여 주십시오.’
그리고 그릇을 준비하십시다. 할 수 있는 대로 크고 많은 그릇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큰 것을 구하는 것은 결코 욕심이 아닙니다. 저와 여러분에게 하나님은 얼마나 크십니까? 얼마나 능력이 있으십니까?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과 상관없이 크고 위대하신 분이지만 우리 마음에서 한없이 작아지곤 하십니다. 우리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이 마치 어린아이가 잠시 가지고 놀다가 버릴 장난감 같은 것이 아닙니까? 입을 크게 엽시다. 크시고 위대하신 하나님께 크고 위대한 것을 구합시다. 이 한 주간동안 우리가 가진 크고 작은 것들을 모두 주님의 손에 옮겨드림으로 내가 상상하지 못했던 크고 풍성한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경험하는 한 주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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