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돌아 볼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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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송필오 작성일20-03-06 08:32 조회5,930회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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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다.
전 7:14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되돌아 보아라 이 두 가지를 하나님이 병행하게 하사 사람이 그의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
2020년은 우리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일들을 겪고 있습니다. 내년에 100세를 맞이하시는 저희 장모님도 평생 이런 일은 겪어 보지 못했다고 말씀하시더군요. 물론 우리가 1세기 전에 일제 치하에 있어 본 적도 있었고 해방 후 6.25 전쟁 같은 참혹한 전란도 겪어보았습니다. 하지만 눈에 보이지도 않는 바이러스에 의한 전염병으로 이렇게 온 나라 전체가 불안과 공포 가운데 빠진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은 아직도 멈추지 않고 있고 시시각각 전해지는 뉴스를 통해 우리 모두가 피부로 전해오는 고통을 함께 체감하고 있습니다. 어떤 여행객의 경우는 해외에서 코리아를 코로나라고 부르는 말에 국민 자존심이 추락하는 경험을 했다고 하며 갈수록 많은 나라들이 한국인을 입국을 제한하고 있고 음식점이나 호텔 같은 곳도 한국인을 꺼려하는 분위기가 갈수록 확산되고 있는 중이라고 합니다. 국가 브랜드 하락을 동반한 실제 경제적인 손실은 아마 엄청날 것으로 추산되고 얼어붙은 경기로 생존의 위기를 걱정해야 할 사업체가 늘어가는 중이지만 무엇보다 이런 침체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걱정입니다. 정상적인 학교 교육 과정도 올 스톱이 되어 대학의 경우 개강 연기, 단기간 온라인 수업 등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준비하고 있는 중입니다.
지난 주 글로벌 투자은행 JP Mogan은 다음 달인 3월 20일에 정점을 찍고 확진자 만 명이 넘어설 것이라 예측하고 있어 불안은 가속되고 있습니다. 이번 사태의 중심에는 폐쇄적인 이단 집단인 신천지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모두가 잘 알고 있습니다. 이번 코로나 사태가 본격화하기 직전, 신천지의 2인자로 부상했던 김남희씨가 이만희는 돈만 아는 사기꾼이란 폭로는 그렇잖아도 수세에 몰린 신천지 내부에 커다란 타격을 주고 있습니다. 원래 가정을 가지고 있었던 그녀는 교주 이만희에게 세뇌를 당해 이혼하고 이만희와 다시 결혼했다고 고백합니다. 정부는 20만이 넘는 신천지 명단을 확보하였고 전국신천지피해자연대는 교주 이만희를 고발한 상태라 더욱 궁지에 몰리고 있음은 분명입니다.
하지만 이번 코로나 사태로 한국 교회가 미처 예상하지 못한 문제는 2차 감염자에 의해 또 다른 슈퍼확산지가 될 수 있다는 우려입니다. 무엇보다 곤혹스럽게 만드는 것은 이런 상황에서 주일 예배를 계속 해야 하나 중단해야 하나에 대해 교회가 일치된 견해를 갖지 못하고 있고 일반 사회에서 교회를 바라보는 시선 또한 상당히 비판적이라는 사실입니다.
이번 사태로 한국 카톨릭은 236년 만에 미사 중단 결정을 내렸다고 합니다. 하지만 한국 교회는 주일 예배를 드려야 한다는 쪽과 드려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 서로 나누어진 상태입니다. 모 대형교회 관계자는 주일 예배를 계속 유지한다는 방침을 알리면서 “예배 중단은 교회의 첫째 본질을 회피하는 것으로 하나님 앞에서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고 더욱이 한 번 중단된 예배는 쉽게 재개되기 힘든 데다 예배 중단이 길어지면 교회 공동체가 와해되거나 회복이 힘들 정도로 약화될 것”이라고 공식적으로 그 사유를 밝혔습니다. 심지어 어떤 교회는 이번 사태를 일제 강점기에 목숨을 걸고 신사참배를 반대하던 시기와 비교하면서 주일 예배는 어떤 경우라도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결사항전 같은 결의를 보이고 있습니다. 이런 강경한 입장에 법으로 예배를 막을 방법이 없는 정부로서는 곤혹스러워하고 있습니다. 일부 언론에서는 교회가 예배를 중단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가 주일 예배를 중단하면 헌금이 급감하기 때문이라고 보도했지만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닙니다. 이런 와중에서 국내 대표적인 보수 교단이며 주일 성수를 가장 엄격하게 규정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 고신측에서는 신학교 교수들이 ‘아주 부득이한 상황 속에서 교회가 공예배 외에 다른 형태의 예배를 시행하는 것은 성경의 가르침에 어긋난다고 볼 수 없다.’는 입장을 발표했습니다.
사실상 간접적으로 코로나 전염 예방을 위해 교회 내 주일 예배 중단을 할 수 있다는 내용입니다. 이 발표에 대해 반발하고 있는 일선 고신측 목회자들도 있습니다. 그 분들은 미리 예방 차원에서 공동체가 모이지 않았다는 말씀의 근거가 어디 있는가? 그리고 한 달, 두 달, 그럼 언제까지 전염병이 끝나기만을 기다릴 것인가라고 반박합니다. 사실 중세시대 종교 개혁가들도 주일 성수에 대하여 매우 엄격한 입장을 취하였고 칼빈이나 루터와 같은 목회자들은 페스트가 한창 유행할 때 죽음을 무릅쓰고 남아있는 환자들을 돌보기도 하였지만 성도들이 예배당을 떠나 피신하는 것까지 금하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구약 성경에 보면 전염병을 앓는 부정한 사람은 일정기간 격리 후에 공동체에 들어오도록 한 조치를 볼 수 있습니다. 특히 레위기 11-15장에 나오는 정결법은 부정하게 된 사람으로 하여금 성막과 공동체를 더럽히지 못하도록 진영 밖으로 반드시 격리시키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현실적으로 확진자를 완벽하게 구별하거나 차단하기 쉽지 않은 이상 전염병 확산을 선제적으로 예방하기 위해서 정부가 내리는 합리적 조치를 적극 협조하면서 대신 예배에 대한 창의적인 대안을 마련하는 것은 믿음이 없는 태도가 아니라 지혜로운 방안이라고 생각합니다. 예배의 형식보다 중요한 것이 예배하는 태도와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어떤 교회가 이런 상황에서도 공적 예배를 중단하지 않는다는 결정에 대해서 우리가 정죄하거나 판단할 문제는 아니지만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상황은 기독교 정체성을 부인하게 했던 일제의 신사참배 때와는 전혀 다르다는 의미에서 신중할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오늘은 무엇보다 이런 상황을 맞이하는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과연 말씀하시고자 하시는 것이 무엇일까 기도하는 마음으로 귀를 기울이는 시간되기를 바랍니다. 제일 먼저 읽은 본문인 전도서에서는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되돌아 보아라고 말씀합니다. 형통한 날과 곤고한 날은 완전히 반대되는 상황입니다. 우리는 모두 형통함을 원하지만 인생에 있어서 곤고함을 피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형통한 날과 곤고한 날을 병행하게 하셔서 우리가 능히 장래 일을 알지 못하게 하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에게 허락된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이 모든 일들이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이루어지는 일이지만 우리가 다 이해할 수 없는 한계를 알며 하나님의 능하신 절대 주권 앞에서 겸손함으로 순복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먼저 국가적인 전염병은 하나님이 주시는 징계일 수 있다는 사실을 보게 됩니다. 민수기에서 하나의 예가 나옵니다.
민 31:16 보라 이들이 발람의 꾀를 따라 이스라엘 자손을 브올의 사건에서 여호와 앞에 범죄하게 하여 여호와의 회중 가운데에 염병이 일어나게 하였느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직전에 그들을 두려워 한 모압 왕은 발람이라는 점술가를 초청해서 이스라엘을 저주하려고 했습니다. 발람은 뇌물에 눈이 어두웠던 사람이었지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 대한 저주를 막으시자 미인계를 사용하도록 해서 이스라엘을 음행과 우상 숭배로 유인해 타락시켰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범죄에 대해 하나님께서는 전염병을 통해 심판하셨지요. 우리가 이런 코로나 사태에 대해서 무조건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단정 짓는 것은 조심스럽기도 하고 하나님을 믿지 않는 분들이 볼 때 오해의 소지가 될 수도 있지만 국가와 민족이 위기 가운데 빠질 때 한국 교회가 제일 먼저 해야 할 것은 회개임에는 부정할 수 없을 것입니다. 국가적인 회개는 자신의 죄 뿐 아니라 가족의 죄, 조상들의 죄, 그리고 국가 지도자들의 죄를 마치 나의 죄인 것처럼 회개하는 것입니다. 보통 국가적인 문제 앞에 서로에게 책임을 넘기거나 외부에서 그 문제의 원인을 찾는 것과는 달리 우리 자신에게서 문제의 원인을 찾는 것이 바로 이스라엘 역사 속에 일어났던 회개 운동의 핵심인 것입니다.
예수님 시대에 실로암 망대가 무너져 18명이 압사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 때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눅 13:4. 또 실로암에서 망대가 무너져 치어 죽은 열여덟 사람이 예루살렘에 거한 다른 모든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5.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우리가 쉽게 범할 수 있는 실수는 재난을 당한 당사자나 관련된 사람들에게 모든 책임을 돌리는 것입니다. 신천지의 일차적인 잘못을 부인할 수는 없지만 그런 이단들이 한국 사회를 병들도록 깨어있지 못한 한국 교회의 책임도 무시할 수 없을 것입니다. 세습, 권력 지향, 물질 문제, 성적인 문제 등으로 오명을 쓰게 된 것은 한 사람이나 한 교회의 잘못이 아니라 우리 각자의 잘못들이 하나하나 모여서 일어난 일입니다. 젊은 세대들이 교회를 등지는 현상도 우리 교회의 책임입니다. 음식은 그냥 두면 부패하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소금은 음식의 부패를 막습니다. 정치 사회가 병들고 부패해져 가는 이유는 세상의 소금의 역할을 감당해야 할 교회가 소금의 역할을 잃고 있는 이유가 아닐까요? 그러므로 우리가 먼저 회개해야 할 이유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회개해야 할 내용은 무엇일까요?
먼저 우리 교회의 죄를 회개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을 거역하고 하나님을 가볍게 여기고 무시한 죄, 말씀을 불순종한 죄, 하나님보다 물질과 사람을 더 사랑한 우상숭배의 죄, 거룩한 신부로서의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세속화 된 죄, 세상 방식을 따라 교회 지도자의 세습, 음행, 돈 문제로 세상으로 지탄 받는 죄, 가정과 이웃을 돌아보지 못한 이기주의의 죄, 영적으로 벌거벗었음에도 불구하고 영적인 눈이 멀어 부하다고 착각하던 죄, 부정과 거짓과 불공평, 권력욕으로 오염된 정치 지도자들의 죄, 예수 믿는 성도를 핍박했던 조상들의 죄까지 우리는 회개할 제목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이런 시기에는 우리의 죄를 돌아보고 회개할 시간임은 분명합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대하 7:14.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들의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찾으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들의 죄를 사하고 그들의 땅을 고칠지라
우리에게 환란과 어려움이 닥칠 때 우리가 가져야 할 자세는 회개이기도 하지만 또 하나는 하나님의 긍휼하심에 대한 소망입니다. 이 소망은 회개하는 자가 가질 수 있는 소망입니다. 이스라엘의 멸망을 눈으로 목격한 눈물의 선지자 예레미야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렘애 3:29 그대의 입을 땅의 티끌에 댈지어다 혹시 소망이 있을지로다
3:30 자기를 치는 자에게 뺨을 돌려대어 치욕으로 배불릴지어다
3:31 이는 주께서 영원하도록 버리지 아니하실 것임이며
3:32 그가 비록 근심하게 하시나 그의 풍부한 인자하심에 따라 긍휼히 여기실 것임이라
3:33 주께서 인생으로 고생하게 하시며 근심하게 하심은 본심이 아니시로다
우리는 회개 속에서 주님의 긍휼을 기대합니다. 하나님은 공의로우시기도 하지만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그 사랑을 회복하기 위해 우리는 회개의 무릎을 꿇어야 합니다.
또 한 가지 우리가 이런 상황에서 가져야 할 것은 종말론적인 신앙의 자세입니다. 어떤 이들은 이런 사태 자체가 바로 종말이 다가왔다는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주님의 재림이 작년보다 올 해가, 그리고 지난 달보다 이번 달이, 어제보다 오늘이 더 가깝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바로 지금이 종말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오해의 소지가 있지만 우리가 겪는 이 초유의 현상을 통해 과연 종말에는 어떤 현상이 일어나게 될까 우리는 조금이나마 상상할 수 있습니다.
눅 2: 10 또 이르시되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11 곳곳에 큰 지진과 기근과 전염병이 있겠고 또 무서운 일과 하늘로부터 큰 징조들이 있으리라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말세 때의 징조 중 전염병이 언급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전염병은 극히 일부일 뿐입니다. 우리가 코로나 바이러스 이 한 가지로 온 나라가 이렇게 불안에 떨고 있고 정치 경제 사회가 마비되어가고 있는 이 상황을 생각해 보십시오. 하지만 마지막 때에는 거기다가 전쟁, 지진, 기근 뿐 아니라 무서운 일, 천체의 변화까지 겹치게 될 것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이렇게 베드로후서 3장에서 말씀합니다.
벧후 3:10 그러나 주의 날이 도둑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3:11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냐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3:12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3:13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3:14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바라보나니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언젠가 주님을 만나게 될 그 날, 주님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 나타날 수 있도록 힘쓰고 계십니까? 만약 그렇지 못하다면 이번의 이 사태를 통해서 다시 오실 예수님을 준비하는 신부로서의 삶을 회복할 수 있길 축복합니다.
전 7:14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되돌아 보아라 이 두 가지를 하나님이 병행하게 하사 사람이 그의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
2020년은 우리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일들을 겪고 있습니다. 내년에 100세를 맞이하시는 저희 장모님도 평생 이런 일은 겪어 보지 못했다고 말씀하시더군요. 물론 우리가 1세기 전에 일제 치하에 있어 본 적도 있었고 해방 후 6.25 전쟁 같은 참혹한 전란도 겪어보았습니다. 하지만 눈에 보이지도 않는 바이러스에 의한 전염병으로 이렇게 온 나라 전체가 불안과 공포 가운데 빠진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은 아직도 멈추지 않고 있고 시시각각 전해지는 뉴스를 통해 우리 모두가 피부로 전해오는 고통을 함께 체감하고 있습니다. 어떤 여행객의 경우는 해외에서 코리아를 코로나라고 부르는 말에 국민 자존심이 추락하는 경험을 했다고 하며 갈수록 많은 나라들이 한국인을 입국을 제한하고 있고 음식점이나 호텔 같은 곳도 한국인을 꺼려하는 분위기가 갈수록 확산되고 있는 중이라고 합니다. 국가 브랜드 하락을 동반한 실제 경제적인 손실은 아마 엄청날 것으로 추산되고 얼어붙은 경기로 생존의 위기를 걱정해야 할 사업체가 늘어가는 중이지만 무엇보다 이런 침체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걱정입니다. 정상적인 학교 교육 과정도 올 스톱이 되어 대학의 경우 개강 연기, 단기간 온라인 수업 등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준비하고 있는 중입니다.
지난 주 글로벌 투자은행 JP Mogan은 다음 달인 3월 20일에 정점을 찍고 확진자 만 명이 넘어설 것이라 예측하고 있어 불안은 가속되고 있습니다. 이번 사태의 중심에는 폐쇄적인 이단 집단인 신천지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모두가 잘 알고 있습니다. 이번 코로나 사태가 본격화하기 직전, 신천지의 2인자로 부상했던 김남희씨가 이만희는 돈만 아는 사기꾼이란 폭로는 그렇잖아도 수세에 몰린 신천지 내부에 커다란 타격을 주고 있습니다. 원래 가정을 가지고 있었던 그녀는 교주 이만희에게 세뇌를 당해 이혼하고 이만희와 다시 결혼했다고 고백합니다. 정부는 20만이 넘는 신천지 명단을 확보하였고 전국신천지피해자연대는 교주 이만희를 고발한 상태라 더욱 궁지에 몰리고 있음은 분명입니다.
하지만 이번 코로나 사태로 한국 교회가 미처 예상하지 못한 문제는 2차 감염자에 의해 또 다른 슈퍼확산지가 될 수 있다는 우려입니다. 무엇보다 곤혹스럽게 만드는 것은 이런 상황에서 주일 예배를 계속 해야 하나 중단해야 하나에 대해 교회가 일치된 견해를 갖지 못하고 있고 일반 사회에서 교회를 바라보는 시선 또한 상당히 비판적이라는 사실입니다.
이번 사태로 한국 카톨릭은 236년 만에 미사 중단 결정을 내렸다고 합니다. 하지만 한국 교회는 주일 예배를 드려야 한다는 쪽과 드려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 서로 나누어진 상태입니다. 모 대형교회 관계자는 주일 예배를 계속 유지한다는 방침을 알리면서 “예배 중단은 교회의 첫째 본질을 회피하는 것으로 하나님 앞에서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고 더욱이 한 번 중단된 예배는 쉽게 재개되기 힘든 데다 예배 중단이 길어지면 교회 공동체가 와해되거나 회복이 힘들 정도로 약화될 것”이라고 공식적으로 그 사유를 밝혔습니다. 심지어 어떤 교회는 이번 사태를 일제 강점기에 목숨을 걸고 신사참배를 반대하던 시기와 비교하면서 주일 예배는 어떤 경우라도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결사항전 같은 결의를 보이고 있습니다. 이런 강경한 입장에 법으로 예배를 막을 방법이 없는 정부로서는 곤혹스러워하고 있습니다. 일부 언론에서는 교회가 예배를 중단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가 주일 예배를 중단하면 헌금이 급감하기 때문이라고 보도했지만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닙니다. 이런 와중에서 국내 대표적인 보수 교단이며 주일 성수를 가장 엄격하게 규정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 고신측에서는 신학교 교수들이 ‘아주 부득이한 상황 속에서 교회가 공예배 외에 다른 형태의 예배를 시행하는 것은 성경의 가르침에 어긋난다고 볼 수 없다.’는 입장을 발표했습니다.
사실상 간접적으로 코로나 전염 예방을 위해 교회 내 주일 예배 중단을 할 수 있다는 내용입니다. 이 발표에 대해 반발하고 있는 일선 고신측 목회자들도 있습니다. 그 분들은 미리 예방 차원에서 공동체가 모이지 않았다는 말씀의 근거가 어디 있는가? 그리고 한 달, 두 달, 그럼 언제까지 전염병이 끝나기만을 기다릴 것인가라고 반박합니다. 사실 중세시대 종교 개혁가들도 주일 성수에 대하여 매우 엄격한 입장을 취하였고 칼빈이나 루터와 같은 목회자들은 페스트가 한창 유행할 때 죽음을 무릅쓰고 남아있는 환자들을 돌보기도 하였지만 성도들이 예배당을 떠나 피신하는 것까지 금하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구약 성경에 보면 전염병을 앓는 부정한 사람은 일정기간 격리 후에 공동체에 들어오도록 한 조치를 볼 수 있습니다. 특히 레위기 11-15장에 나오는 정결법은 부정하게 된 사람으로 하여금 성막과 공동체를 더럽히지 못하도록 진영 밖으로 반드시 격리시키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현실적으로 확진자를 완벽하게 구별하거나 차단하기 쉽지 않은 이상 전염병 확산을 선제적으로 예방하기 위해서 정부가 내리는 합리적 조치를 적극 협조하면서 대신 예배에 대한 창의적인 대안을 마련하는 것은 믿음이 없는 태도가 아니라 지혜로운 방안이라고 생각합니다. 예배의 형식보다 중요한 것이 예배하는 태도와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어떤 교회가 이런 상황에서도 공적 예배를 중단하지 않는다는 결정에 대해서 우리가 정죄하거나 판단할 문제는 아니지만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상황은 기독교 정체성을 부인하게 했던 일제의 신사참배 때와는 전혀 다르다는 의미에서 신중할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오늘은 무엇보다 이런 상황을 맞이하는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과연 말씀하시고자 하시는 것이 무엇일까 기도하는 마음으로 귀를 기울이는 시간되기를 바랍니다. 제일 먼저 읽은 본문인 전도서에서는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되돌아 보아라고 말씀합니다. 형통한 날과 곤고한 날은 완전히 반대되는 상황입니다. 우리는 모두 형통함을 원하지만 인생에 있어서 곤고함을 피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형통한 날과 곤고한 날을 병행하게 하셔서 우리가 능히 장래 일을 알지 못하게 하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에게 허락된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이 모든 일들이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이루어지는 일이지만 우리가 다 이해할 수 없는 한계를 알며 하나님의 능하신 절대 주권 앞에서 겸손함으로 순복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먼저 국가적인 전염병은 하나님이 주시는 징계일 수 있다는 사실을 보게 됩니다. 민수기에서 하나의 예가 나옵니다.
민 31:16 보라 이들이 발람의 꾀를 따라 이스라엘 자손을 브올의 사건에서 여호와 앞에 범죄하게 하여 여호와의 회중 가운데에 염병이 일어나게 하였느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직전에 그들을 두려워 한 모압 왕은 발람이라는 점술가를 초청해서 이스라엘을 저주하려고 했습니다. 발람은 뇌물에 눈이 어두웠던 사람이었지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 대한 저주를 막으시자 미인계를 사용하도록 해서 이스라엘을 음행과 우상 숭배로 유인해 타락시켰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범죄에 대해 하나님께서는 전염병을 통해 심판하셨지요. 우리가 이런 코로나 사태에 대해서 무조건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단정 짓는 것은 조심스럽기도 하고 하나님을 믿지 않는 분들이 볼 때 오해의 소지가 될 수도 있지만 국가와 민족이 위기 가운데 빠질 때 한국 교회가 제일 먼저 해야 할 것은 회개임에는 부정할 수 없을 것입니다. 국가적인 회개는 자신의 죄 뿐 아니라 가족의 죄, 조상들의 죄, 그리고 국가 지도자들의 죄를 마치 나의 죄인 것처럼 회개하는 것입니다. 보통 국가적인 문제 앞에 서로에게 책임을 넘기거나 외부에서 그 문제의 원인을 찾는 것과는 달리 우리 자신에게서 문제의 원인을 찾는 것이 바로 이스라엘 역사 속에 일어났던 회개 운동의 핵심인 것입니다.
예수님 시대에 실로암 망대가 무너져 18명이 압사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 때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눅 13:4. 또 실로암에서 망대가 무너져 치어 죽은 열여덟 사람이 예루살렘에 거한 다른 모든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5.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우리가 쉽게 범할 수 있는 실수는 재난을 당한 당사자나 관련된 사람들에게 모든 책임을 돌리는 것입니다. 신천지의 일차적인 잘못을 부인할 수는 없지만 그런 이단들이 한국 사회를 병들도록 깨어있지 못한 한국 교회의 책임도 무시할 수 없을 것입니다. 세습, 권력 지향, 물질 문제, 성적인 문제 등으로 오명을 쓰게 된 것은 한 사람이나 한 교회의 잘못이 아니라 우리 각자의 잘못들이 하나하나 모여서 일어난 일입니다. 젊은 세대들이 교회를 등지는 현상도 우리 교회의 책임입니다. 음식은 그냥 두면 부패하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소금은 음식의 부패를 막습니다. 정치 사회가 병들고 부패해져 가는 이유는 세상의 소금의 역할을 감당해야 할 교회가 소금의 역할을 잃고 있는 이유가 아닐까요? 그러므로 우리가 먼저 회개해야 할 이유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회개해야 할 내용은 무엇일까요?
먼저 우리 교회의 죄를 회개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을 거역하고 하나님을 가볍게 여기고 무시한 죄, 말씀을 불순종한 죄, 하나님보다 물질과 사람을 더 사랑한 우상숭배의 죄, 거룩한 신부로서의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세속화 된 죄, 세상 방식을 따라 교회 지도자의 세습, 음행, 돈 문제로 세상으로 지탄 받는 죄, 가정과 이웃을 돌아보지 못한 이기주의의 죄, 영적으로 벌거벗었음에도 불구하고 영적인 눈이 멀어 부하다고 착각하던 죄, 부정과 거짓과 불공평, 권력욕으로 오염된 정치 지도자들의 죄, 예수 믿는 성도를 핍박했던 조상들의 죄까지 우리는 회개할 제목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이런 시기에는 우리의 죄를 돌아보고 회개할 시간임은 분명합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대하 7:14.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들의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찾으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들의 죄를 사하고 그들의 땅을 고칠지라
우리에게 환란과 어려움이 닥칠 때 우리가 가져야 할 자세는 회개이기도 하지만 또 하나는 하나님의 긍휼하심에 대한 소망입니다. 이 소망은 회개하는 자가 가질 수 있는 소망입니다. 이스라엘의 멸망을 눈으로 목격한 눈물의 선지자 예레미야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렘애 3:29 그대의 입을 땅의 티끌에 댈지어다 혹시 소망이 있을지로다
3:30 자기를 치는 자에게 뺨을 돌려대어 치욕으로 배불릴지어다
3:31 이는 주께서 영원하도록 버리지 아니하실 것임이며
3:32 그가 비록 근심하게 하시나 그의 풍부한 인자하심에 따라 긍휼히 여기실 것임이라
3:33 주께서 인생으로 고생하게 하시며 근심하게 하심은 본심이 아니시로다
우리는 회개 속에서 주님의 긍휼을 기대합니다. 하나님은 공의로우시기도 하지만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그 사랑을 회복하기 위해 우리는 회개의 무릎을 꿇어야 합니다.
또 한 가지 우리가 이런 상황에서 가져야 할 것은 종말론적인 신앙의 자세입니다. 어떤 이들은 이런 사태 자체가 바로 종말이 다가왔다는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주님의 재림이 작년보다 올 해가, 그리고 지난 달보다 이번 달이, 어제보다 오늘이 더 가깝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바로 지금이 종말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오해의 소지가 있지만 우리가 겪는 이 초유의 현상을 통해 과연 종말에는 어떤 현상이 일어나게 될까 우리는 조금이나마 상상할 수 있습니다.
눅 2: 10 또 이르시되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11 곳곳에 큰 지진과 기근과 전염병이 있겠고 또 무서운 일과 하늘로부터 큰 징조들이 있으리라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말세 때의 징조 중 전염병이 언급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전염병은 극히 일부일 뿐입니다. 우리가 코로나 바이러스 이 한 가지로 온 나라가 이렇게 불안에 떨고 있고 정치 경제 사회가 마비되어가고 있는 이 상황을 생각해 보십시오. 하지만 마지막 때에는 거기다가 전쟁, 지진, 기근 뿐 아니라 무서운 일, 천체의 변화까지 겹치게 될 것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이렇게 베드로후서 3장에서 말씀합니다.
벧후 3:10 그러나 주의 날이 도둑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3:11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냐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3:12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3:13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3:14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바라보나니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언젠가 주님을 만나게 될 그 날, 주님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 나타날 수 있도록 힘쓰고 계십니까? 만약 그렇지 못하다면 이번의 이 사태를 통해서 다시 오실 예수님을 준비하는 신부로서의 삶을 회복할 수 있길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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