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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만을 싫어하시는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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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8-12-09 14:51 조회6,897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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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교만을 싫어하시는 하나님
20181209 심희석 목사
설교시간 : 30-40분

◯ 본문 : 역대하 26장 3-5절

웃시야가 왕위에 오를 때에 나이가 십육 세라 예루살렘에서 오십이 년 간 다스리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여골리아요 예루살렘 사람이더라 웃시야가 그의 아버지 아마샤의 모든 행위대로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며 하나님의 묵시를 밝히 아는 스가랴가 사는 날에 하나님을 찾았고 그가 여호와를 찾을 동안에는 하나님이 형통하게 하셨더라 ( 역대하 26장 3-5절 )

◯ 중심 사상
 웃시야 임금이 나병이 걸려 불행한 일생을 보낸 이유는 그의 교만 때문이다.

◯ 설교의 목표

가. 웃시야 임금에 대해 말 할 수 있다. 
나. 교만으로 무너진 웃시야 임금을 반면교사로 하나님을 의지하는 태도를 선택한다.
다. 오실 예수님을 겸손하게 맞이할 준비를 한다. 

◯ 인사

 서로 인사 나누시겠습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환영합니다.
우리 주님께서 자기의 백성의 죄를 구원하시기 위해 오신 성탄이 이제 곧 다가 옵니다.

 우화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옛날에 하늘을 날고 싶어 하는 거북이가 연못에 살고 있었답니다. 하루는 자기가 사는 연못에 큰 황새 한 마리가 내려앉자, 거북이는 황새에게 다가가 부탁을 합니다. “황새야 내가 하늘을 날고 싶은데, 네가 날도와 줄 수 있겠니? 너는 날개가 없는데, 내가 어떻게 도와 줄 수 있니?” 거북이 말이 좋은 생각이 있다는 겁니다. “황새야, 네가 하늘을 날 때 내가 물고 있는 이 막대를 너의 두 발로 쥐면 내가 날 수 있을 것 같아”, 황새는 거북이의 간곡한 부탁을 들어 주기로 했습니다. 거북이는 자기가 하늘을 나는 것을 친구들에게 보여 주고 싶어, 하늘을 날기로 한 날에 연못에 사는 친구들을 잔뜩 불렀습니다.

 황새는 거북이가 말한대로 거북이가 물고 있던 막대기를 두 발로 움켜쥐고 하늘을 날기 시작했습니다. 황새가 날자, 자기가 살던 연못 점점 작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연못 친구들이  개미 보다 작게 보였습니다. 한 참을 날다 보니 거북이는 황새가 도와줘서 막대기를 물고 날고 있다는 것을 잊어먹고, 자기의 힘으로 날고 있다고 착각 했습니다.
 
 그렇게 생각이 들자 거북이는 개미처럼 보이는 친구들을 향해 이렇게 외쳤습니다. “ 내가, 내가, 진짜 날 수 있어 ~ ” 하고 고함을 치자 물고 있던 막대기를 놓혀, 그만 높은 하늘에서 떨어져 죽고 말았답니다.
참, 허무하죠, 누가 지어낸 이야기입니다만, 세상에는 이런 사람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성경에도 그런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이 바로 웃시야라는 임금이었습니다.

 웃시야는 16세에 왕에 오른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물려받은 나라꼴이 말이 아니었습니다.
이건 완전히 거덜 나 있었습니다.
이유는 할아버지와 아버지 때문 이었습니다.

 할아버지는 요아스 왕이었고, 아버지는 아마샤 왕이었습니다.
할아버지 요아스는 7살에 왕위에 올랐다가, 자기의 멘토 여호야다가 죽자, 신하들의 이야기를 듣고 하나님을 등지고, 우상 숭배하다 하나님의 진노를 사서, 아람나라가 쳐들어 와서 나라를 거덜내고, 신하들로부터 암살당해서 죽었고.

 아버지 아마샤는 25살에 왕에 올라서 처음에 하나님을 섬기고 잘 했어요, 그러다가 에돔을 정복하고 나서 자기의 힘에 그만 도취되었는지 교만해져, 하나님을 버리고 에돔의 우상을 숭배하다가, 하나님의 진노를 사서 북이스라엘과 전쟁하다가 망해 버렸습니다.

 그러니 이게 집안의 내력이 하나님을 좀 섬기다 살만하면 우상을 섬기는 그런 징크스가 생겼습니다.

 그런 집안에 웃시야가 16살에 왕에 올랐습니다. 그러니 16살짜리가 도대체 뭘 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런데 다행인건 경건한 엄마와 말씀에 밝은 스가랴가 있었습니다. 16살짜리 왕이 뭘 할 줄 모르니 왕은 자기 어머니 아니면, 스가랴의 말을 듣고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습니다.
 
 역대하 26장 3-5절입니다.
 웃시야가 왕위에 오를 때에 나이가 십육 세라 예루살렘에서 오십이 년 간 다스리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여골리아요 예루살렘 사람이더라  웃시야가 그의 아버지 아마샤의 모든 행위대로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며 하나님의 묵시를 밝히 아는 스가랴가 사는 날에 하나님을 찾았고 그가 여호와를 찾을 동안에는 하나님이 형통하게 하셨더라 (역대하 26장 3-5절)

 그런데, 웃시야 임금은 하나님의 말씀의 원리대로 통치하도록 조언하는 스가랴 말을 따랐더니, 신기한 일들이 펼쳐지기 시작했습니다. 자기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우상 숭배로 나라를 엉망으로 만들었는데, 16살짜리 임금 웃시야가 하나님 말씀대로 다스리니 나라 술술 풀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첫째가  국방외교 분야 였습니다.
 블레셋과 싸웠는데, 승승장구하는 겁니다. 블레셋은 삼손 이야기에 나오는 나라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다윗이 물리쳤던 골리앗의 나라이기도 하구요.
 
 또한 항상 남쪽에서 유다의 뒤를 공격하던 아라비아와 마온을 쳐서 이겼습니다. 만만한 줄 알았던 유다 나라가 너무 쌔게 나오니까 암몬, 그러니까 지금의 요르단 쪽 사람들이 웃시야에게 조공을 바치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순전히, 웃시야의 능력이 아니고, 멘토 스가랴의 조언을 받아 하나님을 찾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주신 형통함입니다.

 오늘 우리 성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재산이 없고, 유전적 이유로  얼굴이 만족스럽지 못하고, 머리까지 안 좋아도, 예수 믿고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순종하여 살면 주님께서 우리의 삶을 고쳐 주시고, 자존감을 높혀 주시고, 의미 있는 삶으로 바꿔 주십니다. 그리고 영생을 주십니다. 신앙은 관념이 아니고, 신앙은 실제이고, 현실입니다.

둘째, 경제 분야입니다.

 웃시야가 예루살렘의 경비를 강화 합니다. 나라가 약해지니까 자꾸 적들이 쳐들어오는데, 원래 예루살렘 성은 공략하기 힘든 난공불락의 위치에 있는데, 이게 하나님을 등지니까 지리적인 이점이 하나도 없는 겁니다. 아무튼 성곽을 더 튼튼하게 하고, 국민 경제를 위해 농업과 목축을 장려하였습니다. 왕들 중에 이렇게 민생경제까지 철저히 챙긴 왕은 없었습니다.

 우리의 가정과 직장도 아무리 든든해도 하나님께서 지켜주시지 않으면 금방 허물어집니다. 하나님께서 도와주셔야 건강도 물질도 조직도 건강해지고 튼튼해집니다. 웃시야가 하나님을 따르니까 이런 문제들이 술술 풀린 것입니다. 하나님 안에서 먹고 마시고 사는 것이 얼마나 복된 일인지 우리에게 보여 줍니다.

셋째, 군대를 강화합니다.

 할아버지 때와 아버지 때에 그 많던 군인들이 하나님을 등지니 적은 적들에 의해 다 패하고 말았습니다. 다 망한 나라, 무너진 군대를 웃시야가 군대를 다시 재건합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군대가 재건이 되는데, 지휘관급 군인 2,600명, 일반 보병을 30만 명을 확보하게 됩니다. 그리고 신무기(투석기)도 개발하여 웃시야의 이름을 널리 떨치게 됩니다.

 성경은 이러한 현상에 대해 말하기를 “기이한 도우심”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건 한 마디로 기적이라는 겁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말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유다나라가 강해진 것에 대해 주변 나라 사람들도 인정한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안에 살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높혀 주시고, 믿지 않는 사람들도 우리를 향해 이렇게 말합니다. “뭔가 있어” 그럼요. 우리는 뒤에 뭔가가 있죠, 하나님께서 계신 것입니다.
 웃시야는 그렇게 나라를 재건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지금부터입니다.

웃시야가 강해지니까 웃시야가 교만해 지기 시작합니다. 그것이 자기의 능력, 자기의 힘으로 된 것이라, 착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늘을 날고 있는 거북이처럼 말입니다.

역대하 26장 16절입니다
 그가 강성하여지매 그의 마음이 교만하여 악을 행하여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범죄하되 곧 여호와의 성전에 들어가서 향단에 분향하려 한지라 ( 역대하 26장 16절 )

웃시야 왕이 왜 그렇게 하려고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분향은 제사장만 할 수 있었거든요. 그런데, 왜 굳이 그걸 하겠다고..

 그러자 왕의 잘못된 강행을 막으려고, 제사장 아사랴와 함께하는 제사장 80명을 뒤 따라 갔습니다. 아마 우리의 사극대로 한다면, 전하, 아니되온 줄 압니다. 통촉하여 주시 옵소서 하면서 따라 간 것 같습니다.

 옆에서는 안된다 말리고, 웃시야 임금은 막 하겠다고 하고, 하겠다는 임금을 강제로 말리지 못하고 있는데, 이번에는 웃시야 임금이 옳은 이야기를 하는 제사장에게 막 화를 내는 겁니다. 어떻게 되었을 까요?

역대하 26장 18-19절입니다.
 웃시야 왕 곁에 서서 그에게 이르되 웃시야여 여호와께 분향하는 일은 왕이 할 바가 아니요 오직 분향하기 위하여 구별함을 받은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이 할 바니 성소에서 나가소서 왕이 범죄하였으니 하나님 여호와에게서 영광을 얻지 못하리이다 웃시야가 손으로 향로를 잡고 분향하려 하다가 화를 내니 그가 제사장에게 화를 낼 때에 여호와의 전 안 향단 곁 제사장들 앞에서 그의 이마에 나병이 생긴지라 ( 역대하 26장 18-19절 )

그만 웃시야 임금이 나병, 한센씨 병이 생겨버리고 말았습니다. 성경은 그런 경우 어떻게 하느냐 하면, 제사장이 판정을 해서 격리 시킵니다.

하나님께서 치시니 별수 있습니까? 제사장도 놀라고, 자기도 놀라고 아무리 왕이라도 이제는 제대로 나라를 다스릴 수 없는 겁니다. 그래서 평생 나병환자로 살았고, 하나님의 전에는 다시 못 들어가고, 왕궁도 별궁에 살고, 아들 요담이 대신 다스리게 되었습니다.

 다윗 임금이나 히스기야 임금 같았으면, 하나님께 살려 달라고 했을 텐데, 이상하게도 웃시야가 하나님께 회개하고 돌아와서 고침을 받았다 그런 이야기가 없어요. 웃시야가 잘못을 뉘우치고 했으면, 모세의 누이 미리암 처럼 고침을 받았을 수도 있었을 텐데 안타까울 뿐입니다.

 자기 교만 , 자기 고집 이런 것은 아주 신앙의 독소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교만을 싫어하십니다. 영적 교만은 넘어 짐의 앞잡이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의 자리에 자기가 앉았거나, 다른 것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웃시야의 생애를 통해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은

첫째, 교만을 조심하라
 
웃시야가 망한 이유는 그의 교만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형통을 자신의 능력으로 착각했습니다. 그러자 자신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고 믿어 제사장만 할 수 있는 일을 하자 하나님께서 그를 치신 것입니다. 웃시야가 교만하지 않았다면 그는 좋은 왕으로 대대로 남았을 것입니다.

 교만을 조심해야 합니다. 내가 나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인 것을 늘 고백하고 살아야 합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잠언 16장 18절)
 
 주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에서 40년을 훈련시키신 이유는, 신명기 8장에서 자기의 백성을 낮아지게 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게 하기 위함이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부족하고, 어렵고하면, 힘들면 하나님께 나아가 달라고 하는데, 뭐 , 부족한 것이 없고 내가 다 할 수 있으면 하나님을 찾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경계하는 것입니다.

 1960년대 중국에 모택동 주석이 곡식을 먹는 들판의 참새를 보고, 참새가 곡식을 축내니까 참새를 다 잡으라는 명령을 내립니다. 그 일로 중국의 참새가 사라지자 문제는 논밭에 벌레들로 인해 수확량이 급격히 줄어, 참새를 소련으로부터 다시 수입하게 된 웃지 못한 일들이 있습니다. 자신이 무엇이든지 할 수 있고, 자신이 무엇이든지 옳다고 믿는 교만이 이런 비극을 낳았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일을 우리가 다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도와 주셔야 하고, 되었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둘째, 신앙의 동역자와 함께하라

 요아스 임금에게는 여호야다가 있었고, 웃시야에게는 스가랴가 있었습니다. 경건한 영적 스승들이 옆에 있을 때에는 그들의 도움으로 하나님 말씀대로 살았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두 왕은 영적 동역자가 사라지자 교만해 진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리더십 학자들이 말하기, 그 사람이 누구인지는 그 사람과 관계하고 있는 14명을 보면 안다고 합니다. 사실 자기도 자기를 모릅니다. 우리가 지난주부터 Q.T 모임을 하고 있습니다. 신앙은 절대 혼자 할 수 없습니다. 공동체가 필요하고, 지도자가 필요합니다. 서로 서로를 지지하고, 나누고, 중보해주는 동역자가 꼭 필요합니다.

 요즈음 가나안 성도들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가나안은 안나가의 거꾸로 말입니다. 현실의 어려움과 각종 이유 때문에 공동체를 떠나 혼자 신앙생활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수한 경우가 아니라면 권할만한 신앙의 형태는 아닙니다. 신앙의 공동체는 언제나 완벽하지 않습니다. 갈등하고, 고민하면서 하나님의 은혜로 공동체가 함께 성장하는 것입니다. 신앙의 동역자 들과 함께하는 것을 감사하며 기쁘게 가야 할 줄 압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웃시야는 52년을 왕 노릇 하였지만, 그가 말씀의 동역자 스가랴의 조언을 따라 갔을 때는 그의 나라가 기이한 도우심으로 강해 졌지만 그가 교만하여 졌을 때 그의 모든 것이 사라진 것을 오늘 본문을 통해 배웁니다.

 이제 곧 성탄절입니다. 우리 예수님은 태초부터 계셨으며,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의 창조주 이십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생명을 주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신날을 기념하는 날이 성탄절입니다. 이 예수님을 영접하면, 하나님의 백성 자녀가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들을 살리기 위해 , 자기의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오신 메시야 이십니다.

그런데 , 예수님께서 너무 겸손하게 오셨습니다. 다윗의 동네 베들레헴에 그것도 말구유에 오셨습니다. 아무도 환영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죽이려까지 했습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나사렛에서 목수의 아들로 사시며, 세례요한으로부터 세례(침례)를 받으시고, 메시야되심을 증거함을 받으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인 사람들 , 주님의 천국 잔치에 부름을 받은 사람은 성경을 잘아는 사람이 아니라, 죄인,병자,여인 등 주로 약자들 이었습니다. 어떻게 성경을 잘 알고 잘사는 사람들은 그렇게 예수님을 못 받아드리는지 예수님께서 너무 겸손하게 오신 것입니다. 그 예수님께서 천국 복음을 증거하시고, 자기 백성을 살리시기 위해 십자가에 달려 피흘려주시고, 3일 만에 부활하셔서, 하늘 보좌에 오르셨습니다.

 이제 우리 예수님께서 만물을 다스리는 왕으로 계십니다. 이제 곧 예수님께서 다시 오십니다. 정확하게 언지일지 모르지만, 천국 잔치에 부름에 응답하여, 예수님을 믿고, 그분의 말씀을 따라 온 사람들은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리고 그분의 다스림을 받아 영원한 복을 누리게 됩니다.

 하나님은 교만을 싫어하십니다. 우리가 겸손하여, 하나님을 의지하고 , 그분 앞에 무릎 꿇고, 우리가 죄인임을 고백하고, 겸손하게 다스려주시도록, 구하고, 찾을 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우리를 다스려 주셔서, 우리에게 기쁨과 평강을 주십니다.
 하나님은 교만을 싫어하십니다. 우리는 겸손히 주님 앞에 무릎을 꿇고 우리의 왕 되신 주님 앞에 그분을 높혀 드리고, 주님의 말씀에 따라 살아가시는 복된 성도님들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기도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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