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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왕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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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송필오 작성일20-04-09 15:22 조회5,083회

본문

삿 17:6 그 때에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으므로 사람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한 나라가 존재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3가지 요소가 필수적입니다. 이 세 가지란 백성과 법, 그리고 땅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나라를 제사장 나라로 삼으셨습니다. 즉 이스라엘로 하여금 하나님을 섬길 뿐 아니라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민족들을 하나님께 인도하기 위한 제사장 나라로 만드시기 위해 먼저 아브라함을 통해 많은 자손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모세를 통해서는 율법을 주셨고 마지막으로 여호수아를 통해 가나안 정복이란 방법으로 땅을 주셨습니다.

위대한 지도자 모세를 계승한 여호수아는 약 7년간의 가나안 정복 전쟁을 마무리하고 각 지파에게 땅을 분배하고 정착하도록 합니다. 하지만 땅을 먼저 선점했던 다섯 지파를 빼고 나머지 일곱 지파는 지도상으로 분배된 땅을 얻기 위해 계속 싸워서 점령해야만 했습니다. 아직 미완성으로 과업을 남긴 상태에서 여호수아가 죽게 되는데 그가 마지막 고별 설교를 하면서 백성들을 향해 이런 도전을 했습니다. 수 24장 14절, 15절입니다.
수 24:14 그러므로 이제는 여호와를 경외하며 온전함과 진실함으로 그를 섬기라 너희의 조상들이 강 저쪽과 애굽에서 섬기던 신들을 치워 버리고 여호와만 섬기라 
24:15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조상들이 강 저쪽에서 섬기던 신들이든지 또는 너희가 거주하는 땅에 있는 아모리 족속의 신들이든지 너희가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하니

여호수아는 자기가 죽고 난 후 과연 남겨진 백성들이 어떻게 될까를 무척 염려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들에게 너희가 하나님을 섬길 것인가 아니면 타민족들이 섬기는 우상을 섬길 것인가 택하라면서 강력한 도전을 했습니다. 백성들은 모두 이구동성으로 하나님만을 섬기며 말씀에 순종하겠다고 철석같이 약속했습니다. 하지만 여호수아가 죽고 난 후 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결국 시간이 지나면서 하나님을 떠나 범죄하고 타락했습니다. 21장으로 되어있는 사시기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지는데 먼저 16장까지는 사사시대 때 타락과 구원이 반복되는 역사입니다 그 다음 17장부터 21장까지는 당시 상황을 짐작하게 하는 두 가지 중요하고 대표적인 사건이 소개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다시 읽어보겠습니다.
삿 17:6 그 때에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으므로 사람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이 말씀은 사사기를 결론짓는 말씀과 같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각자 자기가 옳다고 생각되는 대로 행하면서 심각한 범죄들을 저지르게 되었는데 오늘은 그 중 첫 번째 한 가정에서 일어난 이야기입니다. 에브라임 산지에 미가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습니다. 에브라임 산지는 가나안 중부 지방에 위치해 있고 가나안 정복 후 종교적 중심지였던 실로가 가까이 있었습니다. 실로는 제사를 통해서 하나님을 예배했던 성막이 있던 장소입니다. 다시 말해서 실로는 예루살렘 이전에 이스라엘 신앙의 중심지였습니다. 그런데 실로와 근접했던 에브라임 산지에서도 얼마나 신앙적으로 타락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는지 스토리는 이렇게 전개됩니다.

미가라는 사람의 어머니가 은 천백 개를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은 천백 개는 적은 돈이 아니었습니다. 블레셋 방백들이 자신들을 괴롭히던 삼손을 유혹하는 대가로 들릴라에게 약속한 돈이 은 천 백이었고 나중에 미가가 고용한 레위인에게 일 년 연봉으로 은 열개를 주겠다고 약속한 것으로 봐서 큰돈임을 알 수 있습니다. 돈을 잃어버린 어머니는 훔쳐간 자를 향해 저주를 했습니다. 그런데 훔쳐간 도둑은 다름 아닌 아들 미가였습니다. 미가는 어머니의 저주를 듣고 두려워서 자기가 가져갔다고 자백하고 돌려주었는데 그 어머니는 아들을 책망하지 않고 오히려  ‘내 아들이 여호와께 복 받기를 원한다.’고 축복해 주었습니다. 아마 그녀는 자신이 퍼부은 저주를 아들에게 돌아가지 않도록 축복의 말로 풀어야 한다는 주술적인 미신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거기에다가 더 보태어 그녀는 아들을 위해 은 이 백으로 신상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미가는 그 신상을 집에 모신 후에 또 에봇과 드라빔을 만들었습니다. 에봇은 네 종류의 실로 짜서 만든 어깨에 걸치는 의복으로 대제사장이 입는 예복입니다. 그런데 미가가 이것을 만들어 숭배용으로 사용한 것입니다. 또 드라빔이란 것은 가정의 수호신상으로 고대로부터 근동 지방의 각 가정에서 숭배되던 우상이었습니다. 미가는 자기 집에 은신상과 에봇, 드라빔까지 다양한 우상들을 들여다 놓고 자기 아들 중 하나를 제사장으로 세웠습니다. 말로는 하나님을 믿는 백성이라고 했지만 사실 온갖 다양한 우상을 들여놓고 섬긴 미가 가정을 보면 그 당시 얼마나 영적으로 무지하고 타락한 상태였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던 중 베들레헴에 살던 레위인 한 사람이 우연히 살 곳을 찾으러 떠돌아다니다가 우연히 미가의 집을 방문하게 되는데 미가는 그 청년이 레위인인 것을 알고 자기 가정의 제사장으로 고용했습니다, 한 마디로 어디서부터 문제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엉망진창이었지만 분명한 것은 이 모든 중심에 바로 기복신앙이 자리 잡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미가의 기복신앙을 가장 잘 보여주는 구절이 17장 12절, 13절입니다.
삿 17:12 미가가 그 레위인을 거룩하게 구별하매 그 청년이 미가의 제사장이 되어 그 집에 있었더라
17:13 이에 미가가 이르되 레위인이 내 제사장이 되었으니 이제 여호와께서 내게 복 주실 줄을 아노라 하니라
 
제사장을 세우는 것은 아무나 하는 일이 아닙니다. 미가는 스스로 제사장을 세우고는 이렇게 말합니다. ‘레위인이 나의 제사장이 되었으니 이제 하나님께서 내게 복을 주실 것을 아노라’ 하나님을 향한 신앙이 미신처럼 전락해 버렸습니다. 누구를 세우든 제사장만 우리 집에 있으면 하나님이 복 주실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에게는 하나님을 위한 제사장이 아니라 내가 복 받기 위한 나를 위한 제사장이 필요할 따름이었습니다. 
 
십자가 없는 영광과 복만 구하는 것이 기복신앙입니다. 말씀을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이용하여 복을 받고자 하는 것이 기복신앙입니다. 교회에 열심히 나오는 가장 중요한 이유가 복이라면 기복 신앙입니다. 복 자체가 잘못이 아니라 그것을 우상화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세상에서 복이라고 하는 것은 보통 소유의 복과 건강의 복입니다. 부자가 되면 복 받았다고 하고 무병하여 건강하면 복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성경은 악인이 형통한 것은 죄라고까지 말씀합니다.

사탄은 하나님께 욥이 기복주의 신앙을 가지고 있다고 충동질했습니다. 만일 그에게 모든 소유와 건강을 빼앗아버리면 틀림없이 하나님을 배반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욥은 모든 소유와 모든 건강을 잃어버린 가장 밑바닥 삶에서도 하나님을 배반하지 않았습니다. 기복주의 신앙은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면 더 이상 하나님을 섬기지 않습니다. 물론 하나님이 주시는 소유와 건강의 복도 있지만 반대로 가난하고 약한 것이 더 복이 될 수도 있습니다. 초대 교회 사도들은 그리스도를 위해 매 맞고 고난 받는 것을 오히려 복으로 여겼습니다. 많은 소유와 건강을 누리는 것보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것이 진정한 복입니다. 만일 소유와 건강 때문에 오히려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되고 죄를 짓는 기회가 많아진다면 그것은 복이 아니라 해가 되는 것입니다.

한 국가가 형성되기 위해 적어도 3가지가 필요합니다. 백성과 법과 그리고 영토입니다. 이제 사실상 가장 중요한 한 가지가 더 남았습니다. 그것은 무엇일까요? 바로 왕입니다. 왕이 없었으므로 이스라엘은 자기 생각에 옳은 대로 살아갔습니다. 그 결과 많은 우상을 섬기고 기복주의로 탈선했습니다. 백성과 법과 영토가 있어도 제대로 다스릴 왕이 없으면 망하게 됩니다. 우리의 진짜 왕은 누구입니까? 이 땅의 왕은 늘 불완전했습니다. 왕이 우상숭배의 죄를 범하면 백성들도 따라서 죄를 범했습니다. 그래서 남 유다나 북 이스라엘 왕국도 불경건한 왕 때문에 결국 패망의 길로 갔습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영원히 변치 않고 살아계신 왕이 계십니다. 빌라도가 판결을 앞두고 계신 예수님께 네가 왕이냐라고 물었을 때 예수님은 네 말이 맞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우리의 영원한 왕이십니다.

만일 우리기 주님을 왕으로 모시지 않고 주님이 옳다고 하시는 것보다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행할 때 기복주의 신앙으로 빠지기 십상입니다. 우리는 주님을 왕으로 섬긴다고 하면서 속으로는 얼마나 복을 섬기고 있는지 모릅니다. 사실상 주님이 왕이 아니라 내가 왕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고요? 우리는 자신을 잘 모를 때가 많습니다. 만일 우리에게 자녀가 있는데 그들이 좋은 직장을 다니고 돈도 많이 벌고 건강하면 싫어할 부모가 누가 있겠습니까? 하지만 그들이 그리스도를 위해 희생하고 고난과 어려움 당하는 것을 본다면 정말 기뻐하시겠습니까? 주님을 위해서라면 소유를 잃어도, 건강을 잃어도 감사할 수 있을까요?

김용의 선교사님이 쓴 책에 자신의 생일 파티 장면을 소개한 글이 있습니다. 그의 다섯 자녀모두 세계 곳곳에 선교사로 흩어져 살고 있었기에 그날처럼 다 같이 모인다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그날 케이크 양초에 불을 붙이는 순간에 눈물을 흘리는 아내 때문에 분위기가 침울해졌습니다. 그래서 분위기 좀 바꿔보자고 한 사람씩 돌아가며 생일 축하 메시지를 던지기로 했습니다. 그때 첫째 아들 충성이가 이렇게 물었답니다.
“아버지, 제가 아프리카에서 사역할 때, 저를 만나러 오신 것 기억나세요?”
“맞아, 그때 한 번 갔었지.”
“그럼 그때 제게 카드 써 주셨던 것도 기억하세요?”
“내가 그랬냐?”
김용의 선교사는 아프리카에서도 가장 가난한 나라인 ‘기니비사우’에서 사역하는 아들을 만나고 나서 한숨이 절로 나왔던 모양입니다. 학교도 전기도 수도도 없는 곳에서 고생하는 아들을 보면서 “어떤 상황이나 환경에서든 잘 견뎌라”라고 말은 했지만 더운 날씨에 10kg이나 살이 빠진 아들의 모습이 너무 안쓰러워 이런 곳에서 아들이 썩기엔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아들에 대한 고민과 갈등은 한국으로 돌아오기 전날 밤까지 계속되었지만 결국 아들에게 카드를 써주고 왔던 모양입니다.
아들이 바로 그 카드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카드에 적힌 아버지의 그 고백을, 그날 밤 저 또한 하나님께 드렸어요. 아버지는 그 카드에 이렇게 적으셨어요. ‘사랑하는 아들아, 우리 땅 끝에서 죽어 하늘 복판에서 만나자.’ 저는 이 말을 제 가슴에 새겼습니다. 아버지, 훌륭한 믿음의 선배가 되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래서 저는 다음 사역지를 ‘땅 끝’이라는 러시아 체첸으로 결정했습니다. 우리 땅 끝에서 죽어 하늘 복판에서 만나요. 감사합니다.”

그 날 생일 파티는 눈물바다가 되어버렸습니다. 김용의 선교사님 가족에게 선교는 그런 의미였고 예수 그리스도는 온 가족에게 그런 존재였던 것이지요. 그것이 기쁘고 가장 감격스러웠다고 합니다.

과연 우리는요? 우리 자녀들이 잘 먹고 잘 살고 건강한 것보다 예수 그리스도를 왕으로 모시고 기꺼이 그리스도를 위한 고난에 동참하는 모습을 보면서 더 기뻐할 수 있을 때 적어도 기복 신앙이 아닐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브라함은 자신의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바치라는 하나님의 명을 따라 모리아 산에서 제단을 만들어 나무를 쌓아 그 위에 이삭을 결박하여 묶고 제사로 바치기 위해 칼을 높이 들었을 때 그가 가진 하나님께 대한 신앙이 결코 기복신앙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했습니다. 욥도 소유와 건강을 다 잃어버렸어도 하나님을 떠나지 않음으로 기복 신앙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도, 사도 바울도 예수님 가신 십자가의 길을 영광스럽게 따름으로 증명했습니다. 로마의 카타콤에 가면 지금도 수많은 믿음의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자신뿐 아니라 자신의 사랑하는 아내, 자녀까지 영원한 하늘나라 소망을 품고 그 모진 희생을 감내하며 그 어두운 장소에서 평생을 살았던, 그리고 기꺼이 순교했던 그들의 삶은 결코 기복신앙이 아니었습니다.

오늘날 우리의 신앙은 알게 모르게 기복신앙에 많이 물들어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위해 받는 고난보다 잘 살고 건강한 것을 큰 복으로 여기는 기복주의 신앙이 깊이 침투해 있습니다. 최근에 코로나 바이러스는 우리가 모르고 있던 이런 우상들을 우리 내면에서 들추어내고 있는지 모릅니다. 이런 기회에 우리의 삶을 점검해 보면서 예수님을 진정한 왕으로 모시고 세상의 어떤 복보다 그리스도를 위한 고난을 더 값지게 여기고 살아감으로 진정 복된 길을 걸어가시는 경성대학 교회 모든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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