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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혈의 능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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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송필오 작성일20-07-07 16:58 조회4,662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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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 9:11 그리스도께서는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사 손으로 짓지 아니한 것 곧 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말미암아
9:12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9:13 염소와 황소의 피와 및 암송아지의 재를 부정한 자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하게 하여 거룩하게 하거든
9:14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
 
여러분, 우리 몸의 피에 대해 얼마나 많이 알고 계십니까? 몸무게 65Kg을 기준으로 하면 피의 양이 대략 5L 정도 되는데 2L 생수병의 2통 반 정도 되는 셈이죠. 수술을 할 때 보면 대부분 피를 흘리게 되는데 혈액량의 10%정도 흘리는 것은 보통 무시하고 약 20% 정도를 흘리면 위험해지므로 그 전에 반드시 수혈을 해 주어야 합니다. 만일 30%, 즉 1.5L이상을 흘리게 되면 목숨을 잃게 되지요. 우리 몸에 있는 모세혈관을 포함해 모든 혈관을 만약 한 줄로 잇는다면 그 길이가 무려 10만 Km 정도 되는데 지구를 두 바퀴 반 정도 도는 어마어마한 길이가 됩니다. 그리고 보통 피가 심장을 출발했다가 다시 심장으로 돌아오는데 약 1-2분이 걸린다고 합니다. 피는 적혈구, 백혈구, 혈소판, 그리고 물 성분이 많은 혈장으로 구성되어 있고 색깔이 붉은 색을 띄는 이유는 적혈구 내 철분 성분 때문입니다. 피는 우리 몸에 필요한 산소를 운반하고 면역반응을 일으키며 독성물질을 정화하고 체온을 조절하는 등 생명유지에 필수적인 기능을 합니다. 따라서 피는 생명과 직결되어 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3,500년 전에 기록된 레위기에 이미 이 사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레 17:11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레 17:11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제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죄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
 
레 17장 14절에도 모든 생물에겐 그 피가 생명과 일체라고 말씀합니다. 그래서 사람이 피를 많이 흘리거나 순환이 멈추면 바로 사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18세기만 해도 이런 사실에 대해 좀 무지했던 모양입니다. 1799년 12월 어느 날 새벽 미국의 초대 대통령 워싱턴이 갑작스러운 호흡곤란 증세를 보이자 당시 미국에서 가장 유명했던 의사 세 명이 호출되었습니다. 가장 먼저 도착한 의사는 병세를 살피더니 나쁜 피를 뽑아야 된다며 두 차례에 걸쳐 1ℓ가 훨씬 넘는 피를 뽑았습니다. 두 번째 의사가 오더니 다시 1ℓ가량의 피를 더 뽑아냈고 그래도 병세가 호전되지 않자 세 번째 의사는 다시 1ℓ가 넘는 피를 뽑았습니다. 결국 워싱턴 대통령은 병명도 모른 채 몸속에 있는 혈액의 50% 이상을 뽑힌 뒤 사망했습니다. 오늘날에 도무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지요.
 
피는 생명과 같습니다. 피를 흘리는 것은 고통을 수반하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피를 좋아하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저도 피를 싫어했지만 과거 직장에서 일할 때는 매일 피와 더불어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수술 도중 갑작스럽게 심한 출혈이 발생하면 생사가 걸린 문제기 때문에 피를 쏟아 붓다시피하면서 피와 한바탕 전쟁을 치르게 됩니다. 한번은 여호와의 증인 고위책임자인 듯한 세 사람이 찾아온 적이 있었습니다. 한 분은 약사였는데 저에게 여호와의 증인이 환자로 수술을 받게 될 경우 수혈을 받지 않도록 해 줄 수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여러 논문 자료를 가지고 와서 피를 제외한 대용품을 사용해 달라고 설득하며 설사 죽더라도 책임은 묻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아시다시피 여호와의 증인은 수혈과 군 입대를 거부합니다. 저는 피의 대용품이 한계가 있음을 설명하고 생명을 구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수혈을 해야 할 상황이 있으므로 그렇게 할 수 없다고 거절한 적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에 대한 메시지는 반항적이고 감성적인 사람들에게 껄끄러울 수 있습니다. 그래서 19세기 후반에 미국과 유럽의 많은 교회들이 그리스도의 보혈을 빼고 값싼 은혜의 복음을 전하기도 했습니다. 그저 듣기 좋은 메시지로 변질시켜 버린 것이지요. 하지만 기독교는 피의 종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성경 자체가 피에 대해 많이 언급하고 있습니다. 루터는 이렇게 말했지요. ‘성경을 쥐어짜면 피가 나올 것이다. 구약을 짜면 짐승의 피가 나올 것이고 신약을 짜면 그리스도의 피가 나올 것이다.’ 그래서인지 옛날에는 성경의 옆 부분을 빨갛게 칠했습니다. 어쨌든 그리스도의 보혈을 뺀 기독교는 더 이상 기독교라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구약성서 창세기에 보면 아담 하와가 하나님이 따 먹지 말라 하신 선악과를 따먹고 범죄 한 이후에 자신들의 수치를 가리기 위해 무화과나무 잎으로 치마를 만들어 입었습니다. 하지만 그 잎은 곧 시들고 말라버리는 것이었지요. 인간이 자기 방법대로 수치를 가리고자 했지만 별 효과가 없었던 셈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해 가죽옷을 만들어 입히셨습니다. 창 3장 21절입니다.
창 3:21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의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이 가죽옷은 어디서 나왔을까요? 당연히 동물이 죽어 피를 흘려야만 그 가죽옷이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성경에 기록된 최초의 피 흘림일 것입니다. 범죄로 인한 수치를 가리기 위해 짐승의 피를 흘리고 그 가죽으로 옷을 만들어 입혀주신 것은 마치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시고 그로 인해 우리가 입게 된 의의 옷을 연상하게 합니다. 그 이후 아담 하와가 낳은 아들 가인과 아벨은 하나님께 각각 제물을 드렸습니다, 가인은 땅의 소산을 드렸고 아벨은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는데 하나님께서는 아벨의 제물만 받으셨습니다. 가인은 몹시 분노했고 결국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 동생 아벨을 쳐 죽이고 말았습니다. 이것이 인류 최초의 살인행위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가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 아우의 핏 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 아벨의 핏 소리는 마치 자신의 억울한 죽음을 갚아달라고 하는 호소와 같았습니다. 그리고 그 호소대로 가인에게 저주가 임했습니다. 그런데 히브리서12장 24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히 12:24. 새 언약의 중보자이신 예수와 및 아벨의 피보다 더 나은 것을 말하는 뿌린 피니라
 
아벨이 예수님처럼 죄 없이 죽임을 당했다고 하는 면에서는 비슷합니다. 그러나 아벨의 피는 자신의 억울함을 풀어달라는 의미가 있지만 예수님의 피는  오히려 은혜와 용서, 그리고 믿는 우리에게 생명을 준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피가 더 나은 것을 말하는 피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출애굽기에서는 피와 연관된 또 하나의 생생한 사건이 등장합니다. 바로 유월절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에서 종살이 하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그들을 해방시키고자 모세를 보내셨습니다. 하지만 애굽왕 바로의 마음은 완고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고집을 꺾기 위해 애굽을 뒤흔들만한 재앙들을 연속해서 내렸지만 그는 완강하게 이스라엘을 내보내지 않았지요. 결국 애굽은 최후의 재앙을 맞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유월절 절기의 시작이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흠 없는 어린 양을 잡아 그 피를 우슬초라는 풀에 적셔서 집 문의 양쪽 기둥과 위쪽 기둥에 바르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밖으로 나가지 말고 집안에만 머물라고 하셨지요. 그 날 밤, 문에 피를 바르지 않은 애굽의 집은 사람과 짐승을 막론하고 첫 태생이 다 죽게 되어 초상집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피를 바른 이스라엘 집은 모두 무사했습니다. 출 12장 13절 말씀입니다.
출 12:13 내가 애굽 땅을 칠 때에 그 피가 너희가 사는 집에 있어서 너희를 위하여 표적이 될지라 내가 피를 볼 때에 너희를 넘어가리니 재앙이 너희에게 내려 멸하지 아니하리라

‘내가 피를 볼 때에 너희를 넘어 가리니’ 이것이 바로 유월절, 곧 영어로 passover의 기원입니다. 양의 피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안전하게 보호했습니다. 그 피를 뚫고 죽음의 사자가 지나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이었는지는 아무 상관이 없었습니다. 착한 사람이었든지 그렇지 않은 사람이었든지 간에 피를 바른 집 안에 있었다면 누구든 안전했습니다. 바로 이것이 피의 능력이었습니다. 하나님은 피가 너희를 위한 표적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표적이란 말은 영어로는 mark, 혹은 sign입니다. 이것은 피 안에 어떤 특별한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 유월절 어린양의 피는 바로 예수님의 피를 상징하는 것이었습니다. 

다시 여호수아서에 보면 이스라엘이 여리고 성을 공격하기 전에 그 성을 탐지할 정탐꾼 두 사람을 보냈는데 이들이 기생 라합의 집에 머물다가 그만 발각되고 맙니다. 이 때 라합이 그들을 지붕위에 몰래 숨겨 주었습니다. 뒤 쫒던 무리들이 나간 후 정탐꾼들을 보낼 때에 라합은 그들에게 자기와 가족 친척들을 살려준다는 맹세를 하게하고 확실한 표를 달라고 요구합니다. 이 때 ‘표’가 유월절 어린양의 피가 표적이 될 것이라고 하신 표적과 동일한 단어입니다. 정탐꾼들은 창문에 붉은 줄을 맨 뒤에 부모, 형제 가족들을 집에 다 모으고 아무도 집 밖으로 나가지 말도록 당부합니다. 붉은 줄을 창문에 맨 집 안에 있으면 안전했습니다. 하지만 말을 듣지 않고 집 밖으로 나가면 죽임을 당했습니다. 예수님의 피는 영원한 안전의 표입니다. 그 피가 사망의 권세로부터 우리를 지켜주는 것입니다. 히 9장 12절 말씀을 잠간 보겠습니다.
히 9:12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구약 시대의 대제사장은 대속죄일에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속죄 제사를 드렸습니다. 염소는 백성들의 죄를 위해 드렸고 송아지는 대제사장 자신과 가족의 죄를 위해 드린 것입니다. 하지만 이 제사는 불완전한 것이었기 때문에 매년 반복해서 드려야 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자신의 피로 단 한 번에 영원한 속죄 제사를 드리셨습니다. 물론 예수님은 죄가 없으셨으므로 자신을 위해서 제사를 드리실 필요도 없으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죄를 위해 더 이상 제사드릴 것이 없습니다. 예수님의 피로 완전하고 영원한 속죄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이런 죄 사함을 여러 가지로 묘사합니다. 시편 103편 12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시 103:12 동이 서에서 먼 것 같이 우리의 죄과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셨으며

동과 서의 거리는 측량 불가능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우리의 죄과를 다시 찾지 못할 정도로 멀리 옮기셨다고 말씀합니다. 이사야 38장 17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내 모든 죄를 주의 등 뒤에 던지셨나이다.’ 등 뒤로 던진다는 것은 다시 보지 않으시겠다는 의미입니다. 미가서 7장 19절에서는 또 이렇게 말씀합니다.
미 7:19 다시 우리를 불쌍히 여기셔서 우리의 죄악을 발로 밟으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깊은 바다에 던지시리이다

하나님은 마치 깊은 바다에 던져버리듯이 우리 죄를 던지신다고 말씀합니다. 깊은 바다에 던진 것을 다시 건지기란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런데도 종종 자신이 과거에 지은 죄를 낚시질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제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히 8장 12절에서는 우리의 죄를 기억지도 않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죄 사함보다 큰 복이 있을까요? 내 모든 죄가 예수님의 피로 인해 옮겨지고 씻기고 제거되고 지워지며 가려졌다는 사실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놀라운 일입니다. 정말 ‘그 은혜와 크신 사랑, 찬송하고 찬송하세’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는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보배로운 예수님의 피로 마음에 뿌림을 받은 자입니다. 비록 구약 시대의 대제사장은 염소와 송아지의 피를 가지고 하나님이 임재하신 지성소 안으로 들어갈 때 혹시 실수로 죽게 될까봐 두려움에 떨었겠지만 예수님의 피 뿌림을 받은 우리는 하나님 앞에 담대히 나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10장 19,20절에서는 말씀합니다.
히 10:19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10:20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은 예수님 자신입니다. 예수님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십니다. 예수님은 마치 지성소 앞을 막고 있던 휘장이 찢어졌듯이 우리 죄를 대신하여 육체가 찢기시고 피를 흘리심으로 하나님께로 가는 새롭고 산 생명길이 되어 주셨습니다. 이제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면 그 피를 힘입어 누구든지 언제든지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 앞에 나아가고자 할 때 우리를 주저하게 만드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예수님의 피로 속죄함을 받았다는 것을 믿으면서도 막상 하나님께 나아가고자 할 때 내 속에 있는 그 무엇이 나를 붙들 때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양심의 소리입니다. 비록 내 죄가 용서받았다 해도 나는 여전히 깨끗하지 못하다는 양심의 소리는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고자 할 때마다 주저하게 만듭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은 양심이 동일할까요? 동일한 점도 있고 다른 점도 있습니다. 도둑질하거나 거짓말하면 믿는 사람이나 믿지 않는 사람이나 동일하게 양심의 가책을 느낍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했거나 하나님의 뜻을 어겼을 때 오는 성령의 근심은 오직 믿는 신자만이 느낄 수 있습니다. 이 가책의 소리는 훨씬 큽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님을 믿게 되면 우리의 양심이 더욱 예민해지고 쉽게 가책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 앞에서는 무시할만한 일에도 하나님 앞에서는 마음이 꺼림이 되는 일이 종종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행 24장 16절에서 말합니다.
행 24:16 이것으로 말미암아 나도 하나님과 사람에 대하여 항상 양심에 거리낌이 없기를 힘쓰나이다

사람들 앞에서 양심이 떳떳하다고 하나님 앞에서도 그렇다고 자신할 수는 없습니다. 이런 예민한 양심에 비추어본다면 하나님 앞으로 나아간다는 것이 쉽지만은 않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어떻게 말씀할까요? 히 9장 13절,14절입니다.
히 9:13 염소와 황소의 피와 및 암송아지의 재를 부정한 자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하게 하여 거룩하게 하거든
9:14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

염소와 송아지의 피는 단지 죄인의 육체를 정결하게 하고 거룩하게 할 뿐이었습니다. 양심까지 깨끗하게 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피는 다릅니다. 예수님의 피는 지은 죄뿐 아니라 우리의 양심까지 깨끗하게 합니다. 예수님의 피는 믿는 자의 마음에 뿌려져서 양심을 정결케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래서 히 10장 22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히 10:22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악한 양심으로부터 벗어나고 몸은 맑은 물로 씻음을 받았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피는 우리 양심을 깨끗케 하십니다. 요한 일서 1장 7절입니다.
요일 1:7 그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때때로 과거의 죄로 인한 얼룩이 여전히 내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내 양심은 끊임없이 네가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다고 자신을 정죄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피는 과거의 얼룩을 마치 없었던 것처럼 완벽하게 지워줄 뿐 아니라 내 양심을 깨끗케 하십니다. 만일 우리가 양심으로 죄를 느낄 때마다 주님께 고백하기만 하면 주님은 자신의 피로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시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 사귐을 갖게 해 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날마다 양심이 더럽혀지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 때마다 예수님의 피를 기억하고 그 앞에 나아가 죄를 고백하십시오. 예수님의 피는 우리의 모든 죄를 깨끗케 하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도록 깨끗한 양심과 담대함을 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예수님의 보혈은 하나님과의 관계뿐 아니라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평화를 줍니다. 
엡 2:13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너희는 유대인과 이방인을 말합니다. 원래 그들은 서로 적대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피로 그들은 가까워졌고 그리스도 안에서 한 형제자매가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의 피는 적대감을 버리게 하고 평화를 가져오는 능력이 있습니다. 지난 주 집으로 퇴근하다가 한 영업용 택시가 먼 차선에서 몇 차선을 가로지르더니 갑자기 제 앞으로 끼어들어 길을 막았습니다. 급히 브레이크를 밟아 사고는 나지 않았지만 화가 났습니다. 그 때문에 신호가 바뀌었는데도 그 차에 막혀 갈 수도 없었습니다. 평상시 같으면 클락숀이라도 한두 번 눌렀을 텐데 이번 주에 준비하는 메시지, 예수님의 보혈이 갑자기 떠올랐습니다. 제 차와 그의 차 사이에 예수님의 피가 놓인 장면이 순간적으로 그려졌습니다. 그러자 분노가 사라져버렸고 제 마음에 평안이 찾아 왔습니다. 혹시 여러분에게 도무지 용납하기 어려운 사람이 있습니까? 그와 내 사이에서 주님의 보혈을 두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리고 어떤 변화가 생기는지 한 번 경험해 보시길 바랍니다.

이제 마무리합니다.

여기 검은 잉크병이 하나 있습니다. 뚜껑을 열어서 해운데 바다에 던진다고 합시다. 바다색이 검어질까요? 어림없는 이야기입니다. 우리의 죄가 아무리 검정 잉크처럼 검다 해도 하나님의 용서의 깊은 바다에 들어가면 아무 표시도 나지 않습니다. 온 천지와 바다를 지으신 하나님의 용서가 바다보다 좁을까요? 우리의 죄가 하나님의 용서보다 클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때로는 양심의 가책으로 오는 소리가 크게 느껴집니다. 때로는 나를 무너뜨릴 것처럼 크게 들립니다. 그 소리 때문에 하나님께 나아갈 자신이 없습니다. 하지만 죄의 소리가 아무리 커도 하나님의 용서의 소리가 훨씬 큽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렇게 용서하시는 근거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입니다. 바로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 영원하신 하나님 아들의 피 때문입니다. 지금도 그 보혈의 능력은 저와 여러분의 삶 속에 역사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의 피로 보호받고 계십니까? 그렇지 않다면 예수님을 나의 구주와 주님으로 믿고 영접하십시오. 예수님을 믿으면 그의 피로 뿌림 받아 영생을 얻고 심판을 받지 않으며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게 될 것입니다.

양심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양심을 무시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입니다. 그렇다고 지나치게 양심의 소리만 듣지 마십시오. 우리가 양심의 죄를 깨닫는 즉시 하나님 앞에 나아가 고백하고 고백한 이후에는 더 이상 죄와 자신을 바라보지 말고 십자가 보혈을 바라보십시오. 그 보혈로 저와 여러분은 영원한 속죄함을 이미 받았습니다. 또 죄를 고백하기만 하면 그 보혈이 더렵혀진 우리의 양심을 깨끗하게 하고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게 합니다.

사람들과의 관계 가운데서도 십자가의 보혈을 가운데 두십시오. 보혈의 의미를 생각하고 적용할 때 평화가 임할 것입니다. 죄와 유혹, 그리고 사단이 주는 시험을 받을 때도 보혈을 의지하고 주장하십시오. 보혈은 어두운 세력의 견고한 진을 깨뜨리고 그 권세를 묶는 강력한 무기입니다. 이 한 주간 모두 보혈의 능력을 의지합시다. 그 보혈의 능력을 붙들고 승리하시는 한 주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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