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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건에 이르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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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송필오 작성일20-09-21 10:00 조회536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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딤전 4:7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경건에 이르도록 네 자신을 연단하라 
4:8 육체의 연단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 
4:9 미쁘다 이 말이여 모든 사람들이 받을 만하도다 
4:10 이를 위하여 우리가 수고하고 힘쓰는 것은 우리 소망을 살아 계신 하나님께 둠이니 곧 모든 사람 특히 믿는 자들의 구주시라 
 
몇 년 전 저의 생일 기념으로 딸들이 제게 관악기인 클라리넷을 선물해 준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악기만 있으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장식품도 아니고요. 그래서 시향 단원인 한 자매에게 레슨 선생님을 소개받았습니다. 그 자매 왈 같은 시향 단원 중에서 가장 인내심이 많고 화를 안 내는 분에게 부탁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성품이 착하고 좋을 뿐 아니라 실력 있는 선생님을 소개받아 매주 한 번씩 저녁에 1시간 씩 레슨을 받았습니다. 사실 새로운 것을 한 번 도전해 보자는 의미로 출발했지만 갈수록 쉽지 않았습니다. 악보를 보는 훈련이 안 되어 있는데다가 평상시에 거의 준비연습도 하지 않고 레슨 시간만 달랑 하다 보니 통 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악보 오선지에 샤프와 플렛이 몇 개 붙어있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그냥 머리가 아프기 시작했습니다.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 시작한 일이 도리어 스트레스가 되니 계속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께 죄송하다고 하고 결국 중도에서 그만두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레슨을 받던 중에 제가 헤매는 것을 보면 선생님이 위로할 마음으로 그랬는지 몰라도 제 앞에서 멋진 곡을 연주하곤 했는데 그것을 들으면서 똑같은 악기에서 저렇게 달리 아름다운 소리가 나올까 감탄을 하곤 했습니다. 아마 제가 조금씩이라도 기를 쓰고 연습했더라면 지금쯤 수준 있는 곡을 연주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훈련의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다면 결코 원하는 수준에 다다를 수 없다는 것입니다. 돌아보면 악기를 배우는 동안 동기나 목표가 분명하지 않았기에 제가 계속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몇 가지 질문을 드려보겠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되고난 후 영적 훈련은 꼭 필요할까요? 필요하다면 영적 훈련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영적 성숙은 은혜의 결과일까요 아니면 훈련의 결과일까요? 대부분 우리는 은혜라는 말은 좋아하지만 훈련이란 말은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훈련이라고 하면 군대 훈련이 언뜻 떠오르기도 하지요. 먼저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딤전 4:7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경건에 이르도록 네 자신을 연단하라 

경건에 이르도록 네 자신을 연단하라, 여기서 연단이란 말은 train, 훈련을 의미합니다. 헬라어로는 ‘김네지아’라고 하는데 ‘연습하다, 운동하다, 훈련하다’는 의미이지요. 이 말에서 체육이란 뜻의 gymnastic, 체육관이란 뜻의 gymnasium이란 말이 나왔습니다. 영적 훈련은 육체의 훈련과 비슷한 점이 많습니다. 몸의 건강을 위해 운동이 꼭 필요한 것처럼 영적훈련은 영적 건강을 위해 필수적입니다. 그럼 영적으로 건강하다는 것은 어떤 상태를 의미할까요? 육적 훈련의 결과는 건강함이라면 영적 훈련의 결과는 한 마디로 경건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경건함은 다른 말로 표현한다면 그리스도를 닮는 것이라고 할 수 있지요 영적 훈련을 영적 운동이라고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에게 규칙적인 운동이 필요한 것처럼 영적인 훈련도 필요하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은 무엇일까요? 그저 구원받아 천국에 오게 하시는 것일까요? 그렇다면 이 죄악 많고 험한 세상에서 고생하며 살도록 놔두기보다 하루속히 데려가시는 것이 훨씬 합리적인 일이겠지요. 하지만 롬 8장 29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롬 8:29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예수님도 요한복음 17장 기도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지요.
요 17:15 내가 비옵는 것은 그들을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다만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

하나님의 목적은 우리가 이 세상 죄악 속에 빠지지 말고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본받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닮는다는 것은 곧 거룩함이며 경건함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예수님을 닮아가도록 몇 가지 방법을 사용하시는데 그 첫 번째는 사람입니다. 잠 27장 17절에서 말씀합니다.
잠 27:17 철이 철을 날카롭게 하는 것 같이 사람이 그의 친구의 얼굴을 빛나게 하느니라 

우리 청년들 가운데 선교단체 숙소에서 같이 모여 살면서 훈련을 받는 형제자매들이 있습니다. 가족도 아닌 사람들과 함께 사는 것은 사실 불편합니다. 서로 살아온 배경이 달라 습관도 다르고 취향도 가치관도 다릅니다. 그러다 보면 부딪치기가 일수입니다. 하지만 훈련은 늘 불편함을 통해서 효과가 있는 것입니다. 편한 환경에서 성숙의 과정은 일어나기가 어렵습니다. 불편한 중에서 자아를 부인하는 법을 배우게 되지요.

하나님은 종종 우리와 비슷한 사람을 통해서 우리를 변화시키십니다. 즉 나의 교만을 깨뜨리시려고 교만한 사람을 내 곁에 붙여놓으시는 경우가 있습니다. 욕심이 많으면 이상하게 욕심 많은 사람이 내 주위를 따라 붙습니다. 철이 철을 날카롭게 하듯이 같은 종류끼리 부딪치면서 우리는 연단을 받습니다. 때로는 우리를 미워하는 사람들을 통해서도 우리를 깨트리십니다. 나를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은 우리를 낮아지게 하고 겸손하게 만들지요. 

그리스도를 닮도록 두 번째 사용하시는 방법은 환경입니다. 롬 8장 28절에서 잘 나타납니다.
롬 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하나님께서는 때로 힘에 부치거나 마치 죽을 것 같이 심한 고난들, 즉 재정적인 압박, 신제적인 질병, 자녀의 문제 등을 통해서 우리를 변화시키십니다. 고난의 골짜기를 통과하면서 꺾이게 되고 변화되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비록 불행이라고 보이는 것들조차 하나님께서 선을 이루시는 목적을 위해 사용하시며 특히 그 과정에서 내가 주님을 닮아가게 된다는 사실을 알 때 우리는 감사하게 됩니다. 

그리스도를 닮아가게 하시는 또 한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 주제인 영적 훈련이란 것입니다. 사람이나 환경은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이 아니지만 이 영적 훈련만큼은 내가 주로 통제할 수 있습니다. 즉, 우리가 오늘 날씨를 바꿀 수는 없지만 오늘 아침 첫 시간에 QT를 가질 것인지, 하루 동안 시간을 내어 성경을 읽을 것인지 기도를 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보통 너무 은혜를 강조하다가 훈련을 무시하기가 쉽습니다. 하지만 훈련이란 은혜를 누리게 하는 도구이며 은혜의 협력자란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은혜 없는 훈련은 남용이 되고 훈련 없는 은혜는 오용이 되기 쉽습니다. 따라서 은혜와 훈련은 서로가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가 영적 훈련에 대해 거부감을 느끼는 이유 중 하나는 훈련의 부작용 때문입니다. 그 부작용이 무엇일까요? 보통 군대에 가면 내무반의 담요나 옷 같은 것은 정말 칼처럼 정리를 해 놓습니다. 하지만 2,3년 군 생활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그 습관이 대부분 남아 있지 않습니다. 옷은 여기저기에 던져놓기 일수입니다. 왜 그렇게 갑자기 바뀔까요? 깨끗이 정리해야 할 동기가 사라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올바른 목적 없이 훈련을 하게 되면 율법주의가 되고 맙니다. 다시 말해서 훈련 자체가 목적이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제가 젊은 날 이런 실수를 많이 저질렀습니다. 매일 QT를 하고, 정기적으로 암송을 하고 성경을 읽으며 모임에 빠지지 않고 일주일에 몇 명 전도했는지 표를 만들어 점검했고 그 칸이 다 채워져 있으면 영적으로 문제없다고 생각했습니다. 형제들을 도울 때도 이런 목록을 가지고 체크했습니다. 물론 이런 일이 불필요하다는 뜻이 아니라 훈련의 목적을 잃어버린 것이 문제였습니다. 목표로 정했던 칸을 메꾸어 나가는 것,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었던 것이지요. 훈련의 목적은 예수님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어떤 좋은 훈련이라 할지라도 예수님을 닮아가는 일에 초점을 맞추지 않으면 율법적이 되기 쉽습니다.

목적 없는 훈련은 고된 노동에 불과합니다. 우리나라 구한말에 땀을 뻘뻘 흘리며 테니스를 치던 외국인들의 모습을 보던 양반들이 ‘저렇게 힘든 일은 하인들이나 시키지.’라고 했다지 않습니까? 우리나라 남녀 양궁선수들 실력이 세계적이라는 사실은 모두 아는 이야기입니다. 그들의 훈련 과정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대표로 선발되면 제일 먼저 해병대 훈련 캠프에 입소합니다. 단순 체험이 아닌 전방 초소 근무를 기본으로 말입니다. 뱀을 목에 두르는 것도 양궁 대표 훈련 과정에서는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훈련 과정에는 또 120 미터 번지 점프가 포함돼 있고 실내 수영장에서 하루에 세 번 12미터 다이빙을 합니다. 심장 박동수 220의 한계치에서도 평정심을 유지하기 위한 훈련이지요. 그러나 이게 전부가 아닙니다. 가장 어려운 훈련이 남아 있습니다. 땡볕이 내리치는 한 여름, 양궁 대표 선수들은 5일 동안 매일 혼자서 12시간씩 걷고 뜁니다. 말없이 혼자 걷고 뛰는 이 '침묵 구보'를 통해 육체적 고통은 물론 외로움과도 맞서 싸우게 됩니다. 이런 극기 훈련으로 어떤 변수나 위기가 와도 선수들의 마음이 흔들리지 않을 수 있는 평정심을 배우게 되는 것입니다. 그들의 목표는 무엇입니까? 단 한 가지, 금메달입니다. 하지만 이 금메달은 세월이 지나면 바래지고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질 것입니다. 유효기간은 길어도 이 세상사는 날까지입니다. 하지만 경건의 훈련의 유효기간은 언제일까요?

경건은 이 세상 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서 약속이 보장되어 있다고 성경은 약속합니다. 다시 말해서 그 유효기간이 없다는 것입니다. 매일 아침 내 몸은 좀 더 자자고 호소하지만 거절하고 일어나 첫 시간에 QT를 하면서 말씀을 읽고 기도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매일 성경 읽는 시간을 놓치지 않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억울한 일을 당할 때 주님을 생각함으로 참고 견디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모든 일에 절제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바로 그리스도를 닮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그 보상, 즉 썩지 않을 면류관이 예비 되어 있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경건한 삶을 훈련할 때 이 땅에서 누릴 수 있는 유익도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자유입니다. 뛰어난 운동선수가 되고자 하면 규칙적인 훈련과 절제 같은 틀에 스스로 매여야 합니다. 선수들은 꾸준한 훈련을 통해서 비로소 목표로 하는 수준을 자유롭게 할 수 있습니다. 훈련의 보상은 자유입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훈련되면 많은 자유를 누리게 됩니다. 죄를 거절할 수 있는 자유, 어려움 가운데서도 감사할 수 있는 자유, 어떤 것에도 매이지 않는 지유를 누리게 되지요.

오늘 본문 마지막 부분입니다.
딤전 4:10 이를 위하여 우리가 수고하고 힘쓰는 것은 우리 소망을 살아 계신 하나님께 둠이니 곧 모든 사람 특히 믿는 자들의 구주시라 

우리가 경건에 이르도록, 예수님을 닮아가도록 이렇게 수고하고 힘쓰는 이유는 무엇보다 우리의 소망을 살아계신 하나님께 두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속한 것만이 영원합니다. 이 땅에 있는 것은 다 낡아지고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소망이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바라는 삶을 살아간다면 언젠가 예수님을 닮은 모습으로 하나님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중학교 다닐 때 교과서에서 큰 바위 얼굴이란 19세기 소설가 나다니엘 호돈의 단편이 기억납니다. 미국 남북전쟁 직후 소년 어니스트는 어머니로부터 ‘큰 바위 얼굴’에 관한 얘기를 듣게 되지요. 마을 앞 깎아지른 듯 절벽 위에는 사람 모양의 바위가 있었는데 아주 오래전부터 “언젠가 큰 바위 얼굴을 닮은 위대한 사람이 나타나게 될 것”이라는 이야기였습니다. 하지만 그 사람이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어니스트는 하루에도 몇 시간씩 큰 바위 얼굴을 바라보았습니다. 어느 듯 세월이 흘러 어니스트는 큰 바위 얼굴일지도 모른다고 생각되는 여러 사람을 만나게 되지만 그들은 모두 그가 기다리던 큰 바위 얼굴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전도사가 된 노년의 어니스트가 해질 무렵 야외에서 동네 사람들에게 설교를 하고 있었습니다. 비로 그 때 그 모습을 본 한 사람이 외쳤습니다. “보시오! 보시오! 어니스트야말로 큰 바위 얼굴과 똑같습니다.”

바라보면 닮아가게 됩니다. 마치 어니스트가 평생 큰 바위 얼굴을 바라보며 살아왔던 것처럼.....영적 훈련은 바로 예수님을 닮아가기 위해 예수님을 바라보는 훈련입니다. 예수님께 집중하면 할수록 우리의 삶은 예수님을 닮아가기 마련입니다. 고후 3장 18절에서 말씀합니다.
고후 3:18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하여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 

우리가 하는 일은 주의 영광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주님을 바라보기 위해 말씀을 읽고 기도하고 또 순종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바라보면 성령님이 우리를 변화시키십니다. 예수님의 형상으로 말입니다.
   
바디매오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소경이었습니다. 어느 날 예수님이 가시던 바로 그 지점에 기다리고 있다가 지나가시는 바로 그 타임에 그는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그는 예수님의 눈에 띄었고 결국은 고침을 받았습니다. 세리장이었던 삭개오도 예수님이 오신다는 소식을 듣고 예수님이 지나가시던 길에서 기다리다가 예수님을 보기 위해 뽕나무에 올라갔지요. 그 때 예수님이 그를 보셨습니다. 예수님이 그의 집에 가시겠다고 하자 그는 자기 재산의 절반을 나누어주고 불법적인 세금이 있으면 4배로 배상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영적 훈련이란 예수님을 바라보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마치 소경 바디메오와 세리장 삭개오처럼 예수님을 볼 수 있는 자리에 자신을 두는 것이지요. 예수님과 마주치면 삶이 변하게 됩니다. 

여러분, 자신을 훈련하십니까? 저와 여러분에게 있는 경건한 습관은 무엇입니까? 육체의 훈련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영적인 훈련은 금생과 내생에 미치는 축복이 있다고 말씀합니다. 기억하시기 바립니다. 영적 훈련의 목적은 예수님을 닮는 것입니다. 이 목표를 잃어버리면 훈련이 율법이 되고 말 것입니다. 단지 했는지 안했는지 나를 정죄하는 율법이 되고 만다는 뜻입니다. 매일 아침 일어나자마자 첫 시간에 QT로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 정해놓은 시간에 기도하는 것, 성경 읽는 것, 암송하는 것, 기회가 있을 때마다 전도하는 것...이 모든 것은 좋은 습관입니다. 하지만 꼭 기억하십시오. 이 모든 것은 예수님을 바라보고 예수님을 닮기 위한 것입니다. 이 한 주간동안 매일 영적 훈련을 통해서 자유함을 누리고 좀 더 예수님을 닮아감으로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삶이 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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