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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를 잊지 마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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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송필오 작성일20-11-22 07:53 조회343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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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 17:11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실 때에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로 지나가시다가
17:12 한 마을에 들어가시니 나병환자 열 명이 예수를 만나 멀리 서서
17:13 소리를 높여 이르되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17:14 보시고 이르시되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하셨더니 그들이 가다가 깨끗함을 받은지라
17:15 그 중의 한 사람이 자기가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돌아와
17:16 예수의 발 아래에 엎드리어 감사하니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라
17:17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17:18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 하시고
17:19 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더라
 
아버지 하나님, 이제 말씀을 듣는 시간입니다. 이 시간 다른 생각이 틈타지 않게 말씀에 집중하게 하시고 말씀안에서 살아계신 주님을 만나게 하여 주소서. 감사의 은혜를 깨닫고 감사의 삶을 회복하도록 도와주옵소서.

지난 주 미 대통령 예비당선자 바이든의 삶이 새롭게 조명되고 있습니다. 얼마 전 신문에 나온 내용을 보니 그에게 수십 년간 간직해 온 액자가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액자에 담긴 것은 흥미롭게도 두 컷짜리 만화입니다.

미국의 유명 작가 딕 브라운이 그린 만화로 왼쪽 컷은 아주 거칠면서도 가정적인 바이킹 주인공이 자기가 탄 배가 폭풍우 속에서 벼락에 맞아 좌초되자 하늘을 향해 소리 지르는 장면입니다. ‘Why me?’ ‘왜 하필 나입니까?’ 하필이면 왜 내가 이런 어려움을 당해야 하느냐고 하나님께 항의를 하는 장면이죠. 그런데 오른쪽 컷은 하나님께서 이렇게 되묻고 있는 장면입니다. ‘Why not?’ ‘왜 너는 안 되지?’
이 짧은 대화 속에서 깊은 인생의 통찰력이 숨겨져 있습니다.
 
메스컴을 통해 알려졌듯이 바이든이 29살 젊은 나이에 상원의원이 되자마자 교통사고로 부인과 딸을 잃어버렸습니다. 그 사고로 아들 둘도 중상을 입었지요. 얼마나 충격이 컸겠습니까? 아마 상상하기 어려운 시련이었을 것입니다. 그 때 바이든의 아버지는 아들이 인생에서 믿음을 잃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바로 이 만화를 넣은 액자를 건넸다고 합니다. 그의 아버지는 그에게 ‘네 인생을 세상이 책임져 줄 수 없다. 털고 일어나라. 누구에게나 언제든지 불행은 찾아올 수 있다.’라고 충고했다고 합니다. 그 후 그는 아무리 나쁜 일처럼 보여도 많은 사람들이 훨씬 더 좋지 않은 일을 겪고 있음을 알았고 삶의 목적을 찾는 노력으로 힘든 상황을 극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말합니다. 그 후 주 법무장관을 지낸 아들이 49세의 젊은 나이로 뇌암에 걸려 또 세상을 떠났을 때도 그 만화가 주는 메시지로 털고 일어설 수 있었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종종 어려운 시련 앞에서 ‘왜 하필 나입니까?’라고 물을 수 있지만 우리는 그 질문에 대한 만족스런 답을 얻을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답을 갖고 계십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 답을 보여주지 않으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혹시 이유를 몰라도, 이해가 가지 않아도 오직 하나님만을 신뢰하도록 하시는 걸까요? 저도 잘 모릅니다. 그렇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나보다 더 어렵고 힘들고 더 고통스러운 상황속에 처해 있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다는 것이지요. 이번 주는 특별히 감사에 대해서 많이 생각하게 된 한 주였는데요, 어떤 책에서 이런 글을 보았습니다.

지금 당신의 집에 전기가 들어온다면 세상에 전기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20억이 넘는 사람들보다 감사할 이유가 있는 사람이다. 만약 집에 식수 시설이 되어 있다면 그렇지 못해 아무 물이나 마시는 10억이 넘는 사람들보다 감사할 이유가 있는 사람이다. 하루 천 원 이상으로 생활하고 있다면 천 원 미만으로 살고 있는 12억 명의 사람들보다 감사할 이유가 있는 사람이다. 하루 한 끼라도 따뜻한 음식을 먹을 수 있다면 8억 명의 영양실조로 고통 받는 사람들보다 감사할 이유가 있는 사람이다. 오늘 아침 일어났을 때 당신의 몸이 건강하다면 당신은 이번 주를 넘기지 못할 100만 명의 환자들보다 감사할 이유가 있는 사람이다. 전쟁의 위험이나 수용소 감금, 외로움, 고문의 고통과 굶주림의 쓰라림을 경험하지 못한 당신은 5억 명의 사람들보다 감사할 이유가 있는 사람이다. 체포, 협박, 학대 그리고 죽음의 두려움 없이 교회에 나갈 수 있다면 당신은 이 세상에 30억의 사람들보다 감사할 이유가 있는 사람이며 만일 당신의 집 냉장고에 음식이 있고 당신의 몸에 옷이 걸쳐져 있다거나 잠을 잘 수 있는 집이 있다면 이 세상 사람들의 75%보다 감사할 이유가 있는 사람이다. 당신이 은행에 그리고 지갑에 약간의 돈이 있고 어딘가 작은 접시에 동전을 모아 놨다면 이 세상의 8%안에 드는 감사할 이유가 있는 부자이다. 지금 이 글을 읽고 당신이 축복받은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된다면 글을 읽을 줄 모르는 이 세상의 20억의 사람들보다 더 감사 할 이유가 있는 사람이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우리보다 더 나은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을 보면서 쉽게 불평하지만 훨씬 어렵게 살고 있는 사람을 보면서 감사할 줄 모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속에서 감사를 빼앗아가는 가장 큰 원흉은 비교의식입니다. 이번 주에는 감사에 대한 말씀, 그리고 책을 읽고 묵상하면서 떠올랐던 생각들을 좀 정리해 보았습니다. 이 시간 나누고자 합니다.
 
먼저 감사는 바이러스 킬러입니다. 불평 바이러스, 원망바이러스를 때려잡는 킬러이기도 하지만 그런 것을 예방하는 백신이기도 합니다. 감사하다보면 불평과 원망에 감염되기가 어렵습니다.
 
감사는 마음의 재산입니다. 누구나 많은 돈을 가진 부자가 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마음의 부자가 될 수는 있습니다. 감사함을 통해서입니다. 감사는 남이 대신 주거나 남이 빼앗을 수는 없는 것이지요. 감사는 많이 할수록 마음이 넉넉해지고 적게 할수록 마음이 빈궁해집니다. 마음이 가난한 것은 복이지만 감사가 없음으로 마음이 빈궁해지는 것은 복이 아닙니다. 감사하는 사람은 모든 것이 감사제목이 되지만 불평하는 사람은 모든 것들이 불평거리로 변합니다. 감사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만 불평은 마귀를 춤추게 합니다.
 
미국의 개척 역사는 청교도들이 흘린 눈물의 감사로 시작되었습니다. 그들은 항해술이 취약했던 1620년 오직 신앙의 자유를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신대륙을 향해 떠났습니다. 180톤의 메이플라워호는 146명이 타기에는 작은 배였으며 사람들은 항해도중 파도의 위험과 극심한 기아, 그리고 질병에 시달렸습니다. 하지만 1620년 12월 26일 크리스마스 바로 이튿날 117일 간의 험난한 항해 끝에 미국 동부 플리머스 해안에 상륙했습니다, 하지만 그 때는 혹독하게 추운 겨울이었습니다. 그들은 식량부족으로 영양실조에 걸렸으며 전염병까지 돌아서 봄이 되기도 전에 44명이 목숨을 잃는 아픔을 겪었습니다. 더구나 신대륙의 기후조건과 토양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보리와 밀을 심어 첫 농사에서도 완전히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먹을 것이 없어 굶주림에 시달렸고 극심한 추위에 고통을 당했으며 앞날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으로 떨어야만 했습니다.
 
마침 그때 원주민 인디언들이 어려운 처지에 놓여 있는 청교도를 도와주었습니다. 인디언 추장 사모세트는 몇 종류의 씨앗을 가져다주었고 재배 기술도 가르쳐주었습니다. 그의 도움으로 옥수수, 호박, 감자 등의 햇곡식을 추수할 수 있었죠. 이에 청교도들은 도움을 준 인디언들을 초대해 잔치를 열고 귀한 열매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렸습니다. 추수한 열매로 만든 음식과 또 칠면조 고기를 요리해서 함께 먹으며 신대륙에서의 첫 추수감사절을 가졌습니다. 이것이 오늘날 추수감사절의 전통이 된 것입니다. 그런데 청교도들이 감사했던 몇 가지 특별한 제목이 있습니다. 그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1. 180톤 밖에 안 되는 작은 배지만 그 배라도 주심을 감사합니다.
2. 평균 시속 2마일로 항해했으나 117일 동안 계속 전진할 수 있었음을 감사합니다.
3. 항해 중에 두 사람이 죽었으나 한 아이가 태어났음에 감사합니다.
4. 폭풍으로 큰 돛이 부러졌으나 파선되지 않았음을 감사합니다.
5. 여자들 중 몇 명이 심한 파도에 휩쓸렸지만 모두 구출되었음을 감사합니다.
6. 인디언의 방해로 상륙할 곳을 찾지 못해 한 달 동안 바다에서 표류했지만 결국 호의적인 원주민이 사는 곳에 상륙하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7. 마지막으로 고통스러운 3개월 반의 항해 도중 단 한 명도 돌아가자는 사람이 나오지 않았음을 감사합니다.
 
오늘 추수감사주일을 맞아 모진 시련 중에도 감사의 제사를 드렸던 청교도들처럼 잃었던 감사를 우리 모두 찾아 하나님께 드릴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감사는 덧셈이고 불평은 뺄셈입니다. 감사는 기쁨을 더하지만 불평은 그것을 빼앗아갑니다. 감사하면 감사거리가 더 보이고 불평하면 불평거리가 더 생깁니다. 감사는 긍정의 에너지를 창출합니다. 감옥과 수도원의 중요한 차이는 바로 감사가 있고 없고의 차이입니다. 감사는 언젠가 결국 자신에게로 돌아오는 말입니다. 민 14:28에서 말씀합니다.
민 14:28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내 삶을 두고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
 
‘네가 말한 대로 행하겠다.’ 어떻게 보면 두려운 말씀이기도 합니다. 사실 하나님의 자비와 용서가 아니라면 이 말씀을 그대로 적용할 때 우리 중에 아마 살아있을 자가 거의 없을 것입니다. 살면서 정말 힘들 때 ‘죽고 싶다.’라는 말을 보통 한두 번은 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나의 모든 말을 듣고 계십니다. 시편에서는 이렇게 말씀하시죠.
시 139:4 여호와여 내 혀의 말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니이다
 
우리가 감사하는 말을 하나님은 듣고 계십니다. 우리가 살다가 내게 감사하는 사람을 보면 뭔가 하나라도 더 주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 하나님은 더욱 그러시지 않을까요?
 
어둠을 밝히는 것은 등불이고 마음을 밝히는 것은 감사입니다. 감사를 자꾸 하게 되면 영적으로 깨어있게 되고 즐거워집니다. 반면 감사를 잃어버리면 마음이 둔해지고 우울해집니다. 감사할 것이 아무것도 없는 것 같이 보여도 감사할 것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공짜로 마시는 공기도 감사할 수 있는 것이지요. 병원에서 마시는 산소는 공짜가 아닙니다. 돈을 주고 사야합니다. 사실 우리가 살아있는 것이 기적입니다. 시편 136편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시 136:1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시 136편은 총 26절이 있는데 매 절마다 감사하라는 말씀을 반복합니다. 해와 달과 별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라고 합니다. 우리는 누구나 햇빛아래 살면서 해를 주셨다고 하나님께 잘 감사하지 않습니다. 감사할 거리는 찾는 사람에게 더 잘 보이는 법입니다.. 하늘이 잿빛처럼 보일 때 더욱 감사거리를 찾아 감사하십시다.
 
다니엘은 하나님께 감사하다가 자신의 목숨을 잃어버릴 뻔 했습니다. 그의 탁월한 능력을 시기 질투한 관리들이 아무리 찾아도 흠이 없자 그의 신앙생활을 꼬투리잡기로 모의합니다. 그래서 왕을 부추겨 왕 외에 다른 신에게 기도하는 것을 금지하고 그것을 어기는 자는 사자 굴에 던져넣는다는 법령을 통과시켰습니다. 다니엘은 그 사실을 알고도 감사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냥 마음속으로 하든지 아니면 집 문을 잠가놓고 몰래하면서 일단 위기를 모면하면 될 텐데 그는 아예 예루살렘을 향해 창문을 열어놓고 매일 세 번씩 감사기도를 드렸습니다.
단 6:10 다니엘이 이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이런 감사는 목숨까지 내놓은 감사였습니다.. 감사할 형편이 아닌데도 감사하는 것, 내가 손해보는 줄 알면서도 드리는 감사가 진짜 감사가 아닐까요? 만일 우리가 극한 고난 중에서도 감사를 하면 어떤 일이 일어나게 될까요? 사실 우리가 사는 동안 크고 작은 압력을 많이 겪습니다, 고통, 질병, 가족 문제, 경제 문제, 불확실한 미래…. 등, 압력을 좋아하는 사람은 드뭅니다. 그런데 우리가 고난과 역경 중에서 감사하기 시작하면 신기하게도 그 압력을 이길 힘이 생깁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어떤 힘든 일을 할 때 불평하면서 하는 것과 감사하면서 하는 것..어느 것이 쉽겠습니까? 그래서 감사는 압력을 견디게 하는 에너지입니다. 압력을 견디면 보석이 됩니다.
 
다이아몬드는 '영원한 사랑의 상징' 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이 다이아몬드는 어떻게 해서 그런 별명을 얻게 되었을까요? 다이아몬드만이 가질 수 있는 튼튼한 강도와 투명한 아름다움 때문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보석중의 보석이라고 불리는 다이아몬드가 석탄과 동일한 화학적 성분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연료로 쓰는 까만 석탄과 투명한 다이아몬드가 같은 원소로 이루어졌다고요? 그럼, 너무나도 다른 이 둘 사이의 차이를 만드는 요인은 과연 무엇일까요?
 
그 해답은 바로 탄소의 배열입니다. 석탄과 다이아몬드는 둘 다 순수한 탄소원자들이 모여서 만들어진 광물질인데 그 탄소의 배열에 따라 하나는 석탄이 되고 하나는 다이아몬드가 됩니다. 즉, 석탄은 탄소원자들이 제멋대로 배열된 반면에 다이아몬드는 질서정연한 형태로 배열되어 있습니다.
 
석탄과 다이아몬드가 다른 배열을 가지게 되는 원인은 이 둘이 받는 열기와 압력이 서로 다르기 때문입니다. 다이아몬드는 땅속 150km∼250km 깊이에서 만들어집니다. 이곳은 맨틀의 가장 윗부분으로 5만에서 6만 기압, 그리고 1300도에서 1800도의 극한 환경이지요. 이렇게 높은 온도에서 엄청난 압력을 받은 탄소원자는 다이아몬드로 변하고 화산 활동으로 마그마가 폭발할 때 땅위로 올라오게 되는 것입니다. 이보다 낮은 기온이나 기압에서는 석탄이 됩니다.
 
탄소가 압력과 열을 견디면 다이아몬드가 되듯이 우리 그리스도인이 압력을 견디면 우리가 다이아몬드 같은 존재가 되지 않겠습니까? 단단하면서 빛을 발하는 것이지요. 감사는 우리가 견디기 어려운 압력을 견디게 합니다. 견디면 우리가 변합니다. 보석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욥이 고백합니다.
욥 23:10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
 
어떤 시련에도 감사하십시오. 원래 석탄같이 검고 질 낮은 저와 여러분의 내면이 언젠가 다이아몬드처럼, 순금처럼 바뀌게 될 것입니다. 그런 모습으로 변한다면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날 우리에게 칭찬과 영광과 존귀의 상을 주실 것입니다.
 
오늘 처음 읽은 본문으로 마무리하겠습니다. 이야기의 내용을 간단히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예수님이 10명의 나병병자를 고쳐주셨는데 그 중 감사한 사람은 딱 한 명, 그것도 천대받던 사마리아인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감사하기 위해서 돌아온 그에게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눅 17:18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 하시고
17:19 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더라
 
여기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두 가지 포인트가 있습니다, 첫 째는 감사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주님은 그의 감사를 받으시고 이 이방인 외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온자가 없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야한다고 말하면서 어떻게 사는 건지는 잘 설명하지 못합니다. 감사하십시오. 이것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비결 중 하나입니다. 특별히 모든 일에 감사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만일 우리가 감사하기 어려운 환경에서 감사한다면 사람들이 우리를 주목할 것입니다. 만약 사람들이 ‘당신은 어떻게 그런 환경에서 감사할 수 있어요?’라고 묻는다면 내가 믿는 예수님 때문이라고 말해 보십시오. 자연스레 전도가 되고 하나님께 영광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 감사는 믿음이라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예수님은 감사하는 그에게 네 믿음이 너를 구원했다고 말씀하십니다. 감사와 믿음을 같이 보고 계십니다. 그렇습니다. 감사는 믿음이 기초입니다. 특별히 어렵고 힘든 고난 속에서 감사하는 것은 더욱 믿음이 필요합니다. 선하신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주관하시므로 모든 것을 선으로 이루어주실 것이라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놀랍게도 나병환자의 감사는 믿음에서 구원으로 연결되었습니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상상할 수 없는 구원의 은혜를 감사함으로 받게 된 것입니다.

이번 추수감사주일을 맞아 우리가 잃었던 감사를 회복하는 축복이 있기를 축원합니다. 감사하는 것은 마치 끓는 압력 밥솥에서 김을 빼는 꼭지와 같습니다. 그것처럼 감사는 압력을 견디게 하고 견디면 견딜수록 우리 각자의 내면이 보석처럼 강해지고 빛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 이 세상에서 얻을 수 없는 놀랍고 영광스러운 상을 주실 것입니다.

감사함으로 우리는 믿음의 삶을 살게 되고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됩니다. 감사함으로 우리 안에 있는 소망의 이유를 묻는 자들에게 예수님을 전할 기회가 됩니다. 어떤 환경에서도 감사할 수 있는 마음은 우리의 삶을 부요하게 합니다. 이번 한 주 동안 작은 일에서부터 감사를 잊지 않고 잃었던 감사를 회복하는 한 주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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